치매를 앓던 어머니와 팥죽을 먹던 하루
이 글은 몇 해 전,
모친이 요양원에 가기 전
동지 무렵의 하루를
지금의 내가 다시 꺼내 적는 기록이다.
그 무렵 모친은 이미
치매 증상을 겪고 있었지만
아직 병원도, 요양원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던 시기였다.
병원에 가자고 하면 화를 냈고
이유 없이 욕을 했고
나를 보자마자 노발대발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아주 드물게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하루가 찾아왔다.
이날이 그랬다.
오전 아홉 시.
오늘로 사흘째, 모친 집 앞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모친이 잠에서 깬다.
씻고 준비하시는 동안 나는 집 안팎을 오가며 쌀 포대를 옮긴다.
시골에서 올라온 햅쌀과 모친이 사두신 묵은쌀.
스무 킬로짜리 쌀이 세 포대다.
두 포대는 무사히 트렁크에 실었지만
마지막 한 포대는 봉투가 찢어져 있는 줄도 모르고 들었다가 쌀이 줄줄 새어 나와 그대로 포기했다.
쌀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듯
내 마음도 그날따라 질질 샜다.
엉엉 울고 싶었다.
정말로.
병원에 가야 했다.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위해 의사소견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 정형외과도, 길 건너 가정의학과도 모두 안 된다고 했다.
몇 년 전 다니던 병원에 전화하니
큰 병원으로 가란다.
결국
모친이 죽어도 안 간다던 그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예약 없이 접수하니 진료는 오후 한 시 반.
그 사이 모친은 교통카드를 누가 훔쳐 갔다며
분노를 터뜨린다.
주민센터로 향한다.
“어머니, 분실하신 거예요?”
잠시 머뭇거리다 모친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대답한다.
“네.”
이렇게 화와 공손함이 한 사람 안에 뒤섞여 있던 시기였다.
오늘이 동지라고 말해주자 모친은 즉각 반응한다.
“어른동지지. 팥죽 먹어야겠네.”
시장에 가서 직접 사겠다고 한다.
춥다고 말려도 걸어야 다리가 안 아프다며 고집을 부린다.
나는 마트에 들러 들기름과 동태, 바나나를 사고 집으로 돌아온다.
잠시 후
모친이 팥죽을 한가득 들고 들어온다.
“너도 먹고 나도 먹으려고.”
그날 우리는 아주 오래간만에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숟가락을 몇 번 뜨다 말고 모친이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뜬금없이 묻는다.
“너 근데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
일 년 내내 나를 보자마자 욕을 하고 화를 내고 죽이니 살리니 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얼마나 수척해졌는지 아픈지 지쳤는지
묻는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야 딸의 얼굴이 보이시나 보다.
“나이 들수록 더 잘 먹어야 되는 거야. 나이 들면 살이 더 빠지는 건데. 삼시 세끼 잘 챙겨 먹어야지.”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 말이 걱정인지 습관인지 잔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팥죽은 조금 더 뜨겁게 느껴졌다.
이야기는
점점 모친만의 세계로 흘러간다.
가족 모두가
이 나라 최초로 무언가를 해냈고
아프지 않았고
장수했고
과거는 언제나 영광으로 재구성된다.
예전 같았으면 사실 여부를 따졌겠지만 그 무렵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버티는 방식이라는 걸.
치매를 앓기 시작한 사람에게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안전한 이야기로 남는다는 것도.
오전을 다 보내고
병원 로비에 앉아
나는 그날을 건넜다.
그날 이후
모친의 상태는 빠르게 변했고
결국 요양원에 가게 되었다.
지금의 모친은
그날의 팥죽도
그날의 시장도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동지다.
모친은 오늘 요양원에서 팥죽을 드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 나도 팥죽을 먹으려고 한다.
모친을 생각하면서.
그날처럼
쌀이 바닥에 쏟아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히, 아주 천천히.
그날은
골로 가는 하루 같았지만
그래도 은혜로웠고
오늘은
모친이 곁에 없지만
그 기억 덕분에
팥죽 한 그릇이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