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 Mar 20. 2024

대구가 불러 낸 워싱턴의 벚꽃

우연이 만든 인연


다음 달 사월에 대구에서 하는 모임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하다 나름의 이유로 워싱턴 D.C. 가 소환되었다.      


워싱턴 D.C. 에 출장을 갈 때마다 빡빡한 일정이나, 무언가 달성해야 하는 성과에 대한 부담감으로 오롯이 나만의 느낌으로 대구를 가끔 언급했었다.   

   

“대구보다 워싱턴 D.C. 를 더 자주 가는 것 같아.”      


한 번도 진지하게 가보지 못한 대구를 가보고 싶은 마음과 워싱턴 D.C. 가 외국이긴 하나, 그 도시에 대한 익숙함이 뒤섞인 말이기도 했다.    


 외국의 특정 도시를 여러 번 방문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텐데 D.C. 를 다섯 번이나 갔다 왔다는 것은 나에게는 인연이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은 1990년대 중반으로 그때는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여서, 다른 사람들과 공식적인 출장으로 가는 미국행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었다.    

  

그야말로 후텁지근한 한 여름 날씨였고, 매일 칠면조 몇만 마리가, 사실은 더 적을 수 있지만, 떼죽음을 당했느니, 노약자는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뉴스가 연일 나왔었다.

    

시차, 음식, 언어 등 모든 것이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에게는 맞지 않아,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집에 돌아오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두 번째 방문은 기족들과 함께 남들 다하는 미 동부 패키지 관광으로 유명한 스폿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두루 들러봤었다.


세 번째는 메리와 함께  D.C. 근처에 사는 메리 친구인 린다를 만나러 갔었다. 앞에 두 번의 출장이나 여행과는 완전 다른 여행이었다. 이 추억은 여기에 담기에는 너무 소중해서 아깝다고 해야 할까 이번 글에는 쓰지 않고 남겨두고 싶다.


메리는 여든이 넘었으나, 단 한 번도 본인이 “OLD”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의 베스트프랜드이다.     


나머지 두 번은 출장이었다.


작년 봄 이즈음, 삼박 오일의 짧은 출장으로 잠깐의 여유는커녕 심지어 도착 한날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꽃샘추위처럼 한기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한 봄 날씨 그대로였으며 당일 회의도 생각보다 일찍 끝나 해외에 왔다는 설렘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마침 내셔널 몰을 지나가게 되어, 한 때 유명했던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가 연인 “제니”를 만났던 워싱턴 모뉴먼트 쪽으로 차를 운전해 갔다.  

    

워싱턴 사람들이나 우리나 다 마찬가지, 아니 어쩌면

미 전역 또는 세계에서 벚꽃 보러 온 사람들인지 교통체증으로 차를 이동할 수조차 없었다.     

더 가까이 가니 말로만 듣던 D.C. 의 유서 깊은 벚꽃이 우리를 영접한다. 주차할 공간도 없고, 다음 일정으로 또 이동해야 해서 난감하던 차에 운전자의 희생으로 잠시 워싱턴 모뉴먼트 근처에 가까스로 내렸다.

      

해마다 피고 져도, 해마다 아름다운 벚꽃 아래에서 급하게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아쉽지만 언젠가를 기약하며 자리를 떠났다.


미흡한 글솜씨와 기억의 단편으로 그날의 감상평을 제대로 쓸 수 없어서 안타까우나, 그래도 이 정도로는 표현해주고 싶다.


포레스트 검프가 워싱턴 모뉴먼트를 바라보고 연단에 서 있을 때, 그를 향해 뛰어오는 제니와 뜨겁게 포옹하면서 하는 말,  “It was the happiest moment in my life.”


쓰고 나니 두 가지가 아쉽다.


하나는 어눌하나  또렷하면서 인상 깊은 그의 목소리를 글에 담을 수 없다는 것과,

오랫동안 못 만난 연인을 만나기 위해 모뉴먼트 앞 호수를 뛰어들 정도의 격한 감흥은 아니었다는 것.


과한 표현일 수 있으나,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찰나로 인한 놀라움과 기쁨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추억은 아름다우나 돌아갈 수 없고, 한 두 번 잠깐 스치기만 했던 이번 대구로 가는 여행이 기다려진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여행지의 어떤 장소는 단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간 사람이나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으로 인해 뇌에 기록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D.C. 의 벚꽃이 아무리 장관이었을지라도 메리와 같이 간 D.C. 의 추억을 이길 수 없으며, 포레스트 검프가 있었기에 워싱턴 모뉴먼트는 기념탑 이상의 매력적인 장소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

  

대구에 가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사월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톰 행크스를 보고 싶으시면 클릭, 포레스트검프

연단에 선 포레스트 검프, 제니 만나기 직전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 밥 한번 먹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