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근이란 걸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직까지는 칼퇴근보다는 야근이 나에게 더 익숙하다고 할까.
그런 내가 6시 땡 하고 퇴근을 했다. 서랍을 잠그고 컴퓨터 전원을 끄고 퇴근을 알리는 시간이 되자마자 팀장님과 동료들에게 "먼저 가겠습니다~." 인사하고 후다닥 사무실을 뛰쳐 나갔다. 앞자리에 있는 후배에게서 “과장님. 무슨 일 있어요? 자주 좀 그러세요. 보기 좋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딸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날라가야 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가족이 있는 청주로 내려온 나는 집안일에 신경쓰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고, 와이프는 육아로 인해 그동안 줄여야 했던 일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이날 저녁에는 와이프가 타 지역에서 회의가 있어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퇴근길 도로는 언제나 그렇듯 극심한 정체다. 6시에 사무실을 나가도 도로가 막히는 걸 보면 남들은 도대체 몇 시에 퇴근하는 건지 궁금하다. 나는 30분 이내로 유치원에 도착해야 했다. 유치원 문을 닫는 시간이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큰 도로로 가면 그 시간에 도착이 불가능하다. 이때부터는 오프로드 레이싱이다. 회사 뒷길을 돌아서 농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가 다시 돌아서 올라가고 굴다리를 지나서 큰 도로까지 가는 것이 최선의 루트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갈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 날따라 길가에 정차하고 있는, 도로를 혼잡하게 만드는 차량이 여럿 있었다. 그 차를 잘 피해서, 신호를 몇 번 연달아 잘 받아서 유치원에 가까스로 도착하니 6시 30분이다.
휴우..........
유치원 벨을 누르자 "서윤아. 아빠 오셨네." 하는 선생님 소리가 밖에서도 들렸다. 모든 아이가 이미 집으로 돌아간 상태고 딸아이만이 홀로 남았다가 마지막으로 유치원을 나선다. 아빠의 이른 퇴근시간이 딸아이의 늦은 하원 시간이다.
엄마껌딱지라 얼마전까지도 아빠가 짠하고 등장해도 엄마가 안 왔다고 울먹이곤 했는데 이제는 덤덤하게 나오는 걸 보면 그새 또 컸구나 싶다.
어릴 적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셨다. 아버지의 일이 고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낮시간에는 할머니가 집에 오셔서 우리 남매를 자주 돌봐주셨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나중에 결혼을 하면 나는 나가서 돈을 벌고, 와이프는 아이를 돌보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철부지 같은 생각. 그런데 어디 현실이 그런가. 우리 부부 입장에서는 서로 역할을 메워가며 아이를 돌보는 중인데, 아이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도 먹을 게 없고, 아이 기분도 즐겁게 해 주고 싶어서 외식하자고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돈가스"가 먹고 싶단다. 녀석. 아빠도 돈가스를 무지 좋아하는데, 아빠 입맛을 닮아서 돈가스를 좋아한다. 늘 가던 우동집이 오늘 하필 휴무라 조금 멀리 떨어진 돈가스집으로 차를 타고 갔다. 코로나라 그런가. 커다란 식당에 달랑 우리 둘이다. 아이 먹을 치즈돈가스 세트 하나랑 내가 먹을 등심 돈가스 하나를 시켜서 아이는 절반도 안 먹고 아빠는 나머지 하나 반을 다 먹었다. 그랬더니 밤까지 배가 꺼지지 않았다.
올해는 이제 한 번 정도 이렇게 더 하면 된다.
그렇게 또 하루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아이의 치즈 돈가스, 나의 등심 돈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