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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an 12. 2021

때가 되면 인사도 잘 해요

어릴 적 어머니는 나가서 부모 욕 먹이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자주 주의를 주셨다. 아버지 사업이 잘 안 풀려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식을 똑바로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셨다. 특히 나는 맏이여서 동생에게 본을 보이도록 강조하신 사항이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인사 잘 하라는 거였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웃는 얼굴로 인사만 잘해도 상대가 좋게 본다고 하니 굳이 안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어머님의 말씀대로 잘 따랐다. 인사를 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칭찬도 해 줬다. 그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습관이 들었고,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곤 했다.


사회생활의 기본이 인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딸아이에게도 인사를 잘하라고 종종 얘기해 왔다. 세네 살 아이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만은 인사 얘기를 일찍부터 꺼내 왔다. 그런데 때가 이른 것일까. 딸아이는 우리끼리 있을 때는 곧잘 하는데 타인과 함께 할 때는 인사를 잘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주민을 만나거나 다른 곳에서 지인을 만났을 때 옆에서 "인사해야지?" 하면 아이는 인사는커녕 아빠 엄마 뒤에 숨기 바빴다.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러지? 언제가 되면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할까?'라는 걱정이 내심 들었다.


그런데 6살이 다 끝나갈 무렵인 2020년 12월초 딸아이는 갑자기 확 달라진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상황에서였다.


집주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겠다고 부동산에 내놓는다고 해서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다. 부동산 중개인은 방문시간을 미리 잡기 위해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해 왔다. 평일에는 아내가 나 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나는 연락을 받으면 아내에게 가능한 시간을 확인하고 중개인에게 연결해 주었다.


그렇게 평일 두 팀을 연결해 주고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가서 집 잘 보고 갔는지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아내는 사람들이 별 말없이 보고 갔다고 말했는데 끝에 "근데 서윤이가 집 보러 오는 사람들한테 인사를 그렇게 잘하더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숨지도 않고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했다.


며칠 뒤 나는 그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 주 토요일에 몇 팀이 집 보러 오기로 예약되어 있었다.이 날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우리 가족 셋 다 집에 있었다. 공동출입구에서 호출이 울렸고 나는 출입 버튼을 눌러주고 현관문 스토퍼를 살짝 걸쳐 놓은 뒤 거실에서 올라올 사람들을 뻘줌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딸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도착음과 함께 현관문 앞에서 사람들 소리가 크게 들리고 미리 걸쳐둔 현관문이 열리면 아이는 후다닥 달려가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집 구경을 하는 와중에는 신기한듯 계속 사람들 언저리를 맴돌았고, 사람들이 집을 다 보고 현관으로 다시 나갈 때에는 "안녕히 가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딸아이에게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괜찮다고 눈치를 줘도 아이는 아빠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서는 인사를 마무리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굳어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이의 인사에 금세 웃음 띤 얼굴로 바뀌었다. "안녕."하면서 응대해 주기도 했고, 아이의 행동에 다들 웃으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동산에서 집이 팔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주인이 좋아할 일이다. ㅎㅎ)


인사를 안 한다고 걱정을 했는데 기우(杞憂)였다. 때가 되면 다 하게 되는데 그것을 일찍 하라고 채근해 봐야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지나고나서 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뒤집기를 너무 늦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쯤 뒤집기를 했고, 언제 일어서서 걸으려나 할 때쯤 또 했고, 언제쯤 기저귀를 떼려나 했더니 너무 늦지 않을 때 했었다. 빠르지는 않아도 매사 그런 단계를 거쳐왔던 것 같다. 


얼마나 지났다고 요즘은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우렁차게 인사를 잘 하는데, 가끔 아빠가 퇴근했을 때 TV를 보느라고 인사도 안 하고 'Out of 안중'을 시현하곤 한다. 아빠는 우리 딸이 달려와 인사하면 안아서 두 바퀴쯤 돌리고 내려놓고 싶은데. 아. 어렵다. 아직은 한결 같은 게 없다. 어쩌면 그때 그때 다른 게 아이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그림책박물관(책 제목: 내가 먼저 인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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