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Jan 26. 2021

입신의 경지

신문에서 조훈현 9단이 바둑대회 우승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가 쓴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몇 년 전에 재미있게 보았고 지금도 가끔 꺼내 보는데, 고수의 클래스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련한 옛 추억이지만 나도 한때 바둑을 취미로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건 부대 후임 영향이 컸다. 군대 말년 병장 시절, 프로 2단 바둑기사가 우리 부대에 신병으로 왔다.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연예인이 온 것처럼 다들 궁금해서 난리였다.


신병은 오자마자 '핵인싸'가 되었다. 핵인싸는 멋지지만, 그의 삶은 피곤했다.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낮에는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에게 불려 가 바둑을 두어야 했고, 밤에는 소대장, 일직사관, 고참에게 불려 가 바둑을 두어야 했다. 나도 신병과 딱 한 번 바둑을 둬 봤다. 접바둑으로.


그런데 누가 그랬다. 프로는 자기와 비슷한 레벨이나 그보다 뛰어난 사람과 경기를 해야지 하수랑 하면 실력이 준다고. 히딩크가 5대 0으로 박살이 날지언정 강호 유럽과의 시합을 계속했던 이유가 그거 아니었나(내 군시절은 2002 월드컵 이전이다). 그 얘기를 듣고서 나는 더 이상 그 친구를 바둑으로 부르지 않았다. 나라도 그 친구 피곤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하면서.


생각난 김에 그때 그 신병은 지금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포털에 검색해 봤더니 프로 9단이 되어 있었다. 너의 전법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허허실실 전법'이라고 했던 게 또렷히 기억이 나는데 결국 입신의 경지까지 올라가 있었다.


역시나.

어떤 상황에서도 될 놈은 되는구나. 멋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의 험난한 첫 연말정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