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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Oct 04. 2021

고깃집에서 숫자 읽는 법 공부하기

"딸,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어?"

"아빠 난 삼겹살"

"여보, 당신은 뭐 먹고 싶어?"

"삼겹살. 당신은?"

"나도 삼겹살. 그럼 저녁에 삼겹살 먹으러 가자."


인생의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한 달에 한두 번 고깃집에 가서 딸아이 밥 잘 먹는 모습 보고 아내에겐 소맥 한 잔 말아주고 나머지 내가 다 먹는 게 행복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고기다. 저녁으로 우리 가족은 삼겹삽을 먹으러 갔다. 늘 가던 식당이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다른 식당으로 가긴 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고기 굽고 계란찜 시켜서 아이 밥부터 먹이고 아내와는 천천히 식사를 했다.


내 식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아이가 맛있게 다 먹고 나서 졸리기 시작했는지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내 자리로 옮겨와 무릎에 앉았다. 와이프는 딸아이에게 아빠 식사해야 하니 무릎에서 내려와 앉으라고 말했지만 딸아이는 내려올 기색이 안 보였다. 음.. 여기서 잠들면 큰일인데.


순간 아이의 관심을 돌릴만한 놀 거리가 떠올랐다.


7살인 딸아이는 한글을 다 떼고 스스로 책을 읽는다. 그러나 숫자는 아직 서툴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단위가 큰 숫자가 나오는데, 얼마 전 숫자 읽는 법을 몰라서 물어보길래 한 번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 졸음을 날리기 위한 방법으로 식당 메뉴판에 적힌 숫자를 잘 읽는 지 시켜 보았다.


"너 숫자 읽는 법 기억나?"

"응."

"저기 메뉴판 보이지?."

"응."

"저기 저기 맥주 보여? 얼마야?"

"음... 사천 원."

"그 위에 산삼주 보이지? 그거 얼마야?"

"오천 원."

"저기 산삼주 앞에 앞에 복분자음 찾았어? 얼마야?"

"몰라."


천 단위까지만 가르쳐줘서 만단 위는 아직 읽을 줄 모른다.


"뒤에 동그라미가 네 개 있으면 숫자에 만이라고 붙여 읽는 거야. 그럼 만원이지?"

"아~~~"

"그럼 저기 위에 육회 얼마야?"

"이만 원."

"그 옆에 오겹살은?"

"일만 이천 원."

"그 아래 돼지고기 삼합세트 보이지? 얼마야?"

"오천 원."

“어? 다시 잘 봐봐. 동그라미가 네 개야.”

“오만 원.”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우리 부녀는 메뉴판을 한 바퀴 다 훑으며 숫자 읽는 법 공부놀이를 했다. 딸아이는 아는 게 나와서 신이 났고 더 하자고 난리였다. 가야할 시간, 오늘은 충분히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아이의 잠도 좇았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알딸딸하게 기분 좋은 상태로 딸아이 업고 낄낄깔깔 웃으며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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