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Dec 31. 2021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혈액원에 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K팀장님이 계신다. 이번에 공로연수 들어가면 퇴임할 때 사무실에 안 나올 거라고 하셔서 직원 여럿이 함께 송별하는 식사일정을 잡아놨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되면서 다 같이 모일 수가 없게 되었다. K팀장님은 식사자리를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사양하셨지만 또 어디 그런가. 인원수에 맞게 조를 나눴다. 나는 이 모임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라 제일 먼저 함께 했다.


K팀장님과는 사석에서 처음 만났다. 코로나 시국이라 내 환영식도 일년 내내 없었을 정도로 우리는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켜왔다. 연말까지 며칠 안 남았지만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가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미리 예약해 둔 칸막이 방안에 네 명이 마주 앉았다. 아담한 공간, 좋은 멤버, 맛있는 식사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레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말수가 적으신 K팀장님도 지난 시간에 대한 감회가 깊어지셨는지과거 일들을 꺼내 들려 주셨다.


K팀장님은 광주전라 지역에서 계속 근무하셨기에 지역에서 겪었던 재난활동 기억이 많으셨다. 93년 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구호활동으로 현장에 나갔던 일을 먼저 얘기해 주셨다. 2014년 4월에는 세월호 참사가 나서 진도에서 40여일 간 급식차량으로 활동을 하셨는데 현장에서 차량을 철수하여 광주로 돌아오던 와중에 장성에 있는 노인요양병원에서 큰 화재가 났다고 하여 방향을 틀어 장성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모두들 말은 안 하지만 각자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추억들이 있다. 나도 팀장님처럼 잊을 수 없는 재난현장이 있었고 여기 브런치에 글로도 썼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다들 떠올리는 게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팀장님과의 식사는 끝이 났다. 연말연초는 항상 이렇게 작별과 또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팀장님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올해의 마지막 글입니다. 새해에도 자주 쓰진 못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쓸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이웃 작가님들 모두 올한해 고생 많으셨고,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기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