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사무실에서 마스크 쓰고 일하는데 답답했다. 잠시 바람 좀 쐬려고 옥상 테라스에 나갔다. 그런데 거기서 시설담당 김주임이 뭔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뭘 보고 있나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김주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것 좀 보라고 말했다.
까치였다. 김주임 말로는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사무실을 찾아온 게 3년 만이란다. 보아하니 집을 지을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가 전봇대 변압기 앞이다. 저 자리에 둥지가 생기면 화재나 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혈액원은 전력문제에 민감하다. 혈액의 온도 유지 때문이다. 헌혈자로부터 채혈받은 혈액은 제제 후에 혈액냉장고에 보관된다. 적혈구는 1~6도, 혈소판은 20~24도, 혈장은 -18도 이하 온도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전력문제로 온도가 일탈하면 혈액은 전량 폐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까치의 입주를 환영할 수 없었다.
"상황을 지켜봅시다."라고 말하고 주말을 보냈는데 그사이 까치집은 엄청 커져 있었다. 우리는 한전에 까치집 철거를 요청했고, 다음 날 곧바로 한전 직원이 작업차를 끌고 사무실에 왔다.
작업 직전에 현장에 내려갔더니 처음부터 과정을 봤던 김주임이 “까치가 영리하긴 한가 봅니다. 한전 차량이 들어오는 걸 보더니 바로 나뭇가지 하나 물고 저쪽으로 날아가더라고요. 날아가는 새 얼굴을 봤는데 왠지 처량해 보였습니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눈 좋은 김주임은 까치의 표정까지 봤구나. 그 표정은 뭘까. 집을 잃은 상실감이 얼굴에 드러났나. 한전 직원이 긴 막대기로 까치집을 헐어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누군가를 돕는 일도 우리의 일이고, 시설을 잘 관리하는 것도 우리의 일인 것을. 전봇대는 말끔해졌는데, 까치의 처량한 표정이란 말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 어지럽게 남았다.
<사진 출처: 한국전력공사,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