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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n 14. 2022

6월 14일에 아이와 야구장에 간 이유

6월 14일은 '세계 헌혈자의 날'이다. ABO혈액형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랜스타이너 박사의 탄생일을 기념해 지정된 날이다. 혈액사업을 하는 적십자에서는 5월 8일 '세계 적십자의 날'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이 날에는 헌혈자를 예우하는 대규모 이벤트가 지역별로 진행된다.


2019년 6월, 내가 근무했던 충북혈액원에서는 청주야구장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경기에 맞춰 헌혈이벤트를 준비했다. 다회 헌혈자 시구와 시타, 헌혈자 야구 관람 등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참석 못한다는 헌혈자가 생겨서 자리가 남게 되었다.


"과장님. 저녁에 뭐하세요?" 일하는데 후배 Y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니 왜?"

"오늘 저녁에 저희 야구 프로모션 하잖아요. 못 온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야구 보시려면 아이랑 오셔도 돼요."

"그래? 그럼 일단 집에 전화나 한 번 해 보고."


가뜩이나 청주에선 프로야구 경기가 적은데, 멀리 가지 않아도 야구경기를 볼 수 있다니 아이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다. 모처럼 아내는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5살 아이와 둘이서 가기로 했다.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픽업해서 야구장에 갔다. 경기장 주변으로 차가 많아서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주차를 했다. 오후부터 나와서 일하고 있는 후배 Y에게 티켓을 받고, 다른 직원들 먹을 치킨도 몇 마리 샀다.


그렇게 한 손은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치킨을 들고 야구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1회 말 경기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앞 뒤 직원들에게 치킨을 한 봉지씩 건네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려고 했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딸아이가 자꾸 내 옷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어색해서 그렇겠지,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아이는 계속 힘든지 칭얼대며 나에게 매달렸다. 그러더니 결국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렸다.


"아빠. 우리 집에 가자. 엄마 보고 싶다."     


어이쿠.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걸 해야지. 그렇게 우리는 함성을 뒤로하고 유유히 야구장을 빠져나왔다. 그때가 2회 초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와이프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말하니 모처럼 '앗싸’ 했을 아내도 “그럼 그렇지. 빨리 밥부터 얹어놓을게."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야구 경기를 보여주겠다는 나의 계획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에게 "아빠랑 야구장에 갔던 거 기억 나?"라고 물어봤더니 "그때 많이 힘들었어."라고 기억하고 있더라.


오늘이 다시 6월 14일이다. 올해 '세계 헌혈자의 날'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작년 말 혈액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광주에서는 지난 주말 프로야구 이벤트를 앞당겨 실시했다. 헌혈자 중에서, 우리 직원 중에서 누군가는 나처럼 아이와 야구장에 갔겠지. 이날만큼은 승패를 떠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하루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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