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적십자에 입사하게 되었다. 예비합격으로 4달 늦게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들어왔다는 게 중요하고, 들어오면 그만이지.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이 “해 봐야 알겠지만, 뭐 열심히는 할 겁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서 열심히 일할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8월의 첫 날, 나는 양복에 넥타이까지 메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출근지가 처음 지원했던 혈액원이 아니었다. 충북지사로 바뀌어 있었다. (지사는 재난구호, 사회봉사, RCY, 응급처치(심폐소생) 및 수상안전, 이산가족상봉 등 업무를 하는 곳을 말한다). 전임자가 3개월 수습을 마친 7월 1일에 지사와 혈액원 두 기관이 교류인사를 하였는데, 전임자가 지사로 발령받고 며칠 안 돼 퇴사를 해 버린 것이었다. 나로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기관이 바뀌었다고 특별히 부담이 된다거나 싫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심이 있던 펀드레이저 일에 가까워져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출근해 보니 건물은 혈액원과 같이 써서 작지는 않은데, 지사 직원 규모는 적다고 느껴졌다. 회장, 국장, 팀장, 사원을 모두 합쳐도 직원 13명이 전부였다. 인원수 적은 정도로 따지자면 제주 다음 정도 되지 않을까. 소수 인원이라 채용도 몇 년에 한 번 퇴사자가 생겨야 있을까 말까 해 보였다. 건물과 가구가 오래되었지만 나름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습직원은 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게 낯설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 사무실을 들어오면 일어나 인사하고, 선배들이 일을 시키면 처리하고, 타 부서에서 부르면 부르는 곳으로 가서 힘을 보태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내 일이었다. 이때만큼 한가로운 때도 없었지만 뭔가 하고 있지 않는 이 때가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선배들은 자기 일이 바빠서 내 옆에서 일을 일일이 알려주지는 못하고, “이거 읽고 계세요.”라며 두꺼운 법규집과 사업보고서를 주고 갔다. 그래도 선배들은 나를 두고 “진짜 잘 들어왔다. 앞의 친구보다 훨씬 낫다.”라고 볼 때마다 칭찬해 줬다. 내가 정말 전임자보다 나은 건지, 아니면 나마저 나가면 공백기가 길어지니 붙잡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당시로서는 속내를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잘 하고 있다’라고 믿기로 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나름 편안해졌다.
드라마 속 세계가 현실과는 다르듯이, 내가 상상했던 직장의 모습과 달리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적십자는 너무나 정적이었다. 적십자하면 하얀 구호조끼를 입고 현장에 달려가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정작 내부의 일이란 단조롭고 사무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내 소속이 지원부서인 총무팀 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난 9월 중순, 드디어 나는 일의 의미를 생각케 하는 첫 출장을 가게 되었다.
2003년 9월 초, 초강력 태풍 매미가 남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는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남부지방은 피해가 막심했다. 복구인력과 장비 지원이 필요했다. 수습직원의 눈에도 사무실이 갑자기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K팀장님이 나를 자리로 부르셨다. “내일부터 태풍피해지역 지원을 다녀올 겁니다. 선발대로 남해군을 갈 테니 잘 준비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게임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다. 아이들이 편을 갈라 놀이를 할 때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고 여기저기 끼워주는 사람을 깍두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수습직원은 깍두기 같은 존재다. 아직 정식으로 도맡고 있는 일이 없어서 가장 먼저 포함시킬 수 있는 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음 날 오후 3.5톤 급식차량과 긴급재난차량 등 차량 2대에 직원과 봉사원 5명이 선발대로 먼저 출발했다. 첫 출동이었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가 남해군으로 진입하고 바다에 가까워지자 곳곳에서 태풍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집채같이 큰 배가 길 한쪽 편에 박혀 있고, 물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흔적으로 부유물들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보였다.
우리는 차를 몰아 관공서로 갔고 현지 공무원을 만나서 다음날 내려올 봉사자들이 일할 곳을 설명 듣고 소개해 준 숙소로 갔다. 모텔 이름이 ‘밀포드’였는데, 사장님이 멀리서 좋은 일 하러 내려왔다면서 숙박비를 받지 않으셨다. 심지어 통닭까지 방에 시켜 주셨다.
다음 날 여러 대 버스에 수백 명의 봉사자들이 내려왔다. 봉사자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해변을 따라 부유물과 집안으로 넘어 들어온 쓰레기를 치우고, 주민센터에 들어온 기부물품을 분류했다. 급식차량에서는 자원봉사자와 공무원들이 먹을 식사를 만들어 제공했다. 나는 옆에서 물건을 나르고 옮기는 보조 일을 했다.
태풍 피해는 이토록 큰데,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더없이 맑고 햇빛에 비친 바다는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정해진 활동을 모두 마치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 운전하는 선배에게 미안해 조수석에 앉아 졸음을 참아보려고 무지 노력하였지만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천근만근 뻐근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 날의 경험으로 몸은 뻐근했지만 남모를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이 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