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카톡으로 청첩장이 왔다. 카톡이 생기면서 모든 게 손쉽게 전달되는 세상이다. 모바일 청첩장보다는 내 이름이 적힌 종이 청첩장을 받는 게 좋지만 세상은 점차 편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어찌하랴. 내가 익숙해져야지. 그런데 누가 보낸 거지? 카톡명으로는 누군지 알 수 없어 화면을 열어보니 이 회장님이다. 이번에 자녀를 결혼시키시는구나. 나는 카톡에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이라고 짧게 메시지를 남겼다.
내 휴대폰에는 이 회장님처럼 회장님 연락처가 많이 저장되어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된다. 사업가도 만나고 기관장도 만나고 단체장도 만난다. 하지만 내 휴대폰 속 회장님들은 기업체를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왕회장님은 아니다. 그들은 바로 적십자에서 알게 된 봉사회장님들이다. 어쩌면 적십자만큼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많은 조직이 있을까 싶기도 든다.
먼저 회사 업무를 총괄하는 분이 '회장님'이다.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창립됐을 때부터 100년 넘게 '총재'라는 명칭을 써 왔다. 그런데 2011년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 명칭을 두고 일본 잔재를 담고 있어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공공기관 중 총재 명칭을 쓰는 곳은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대한적십자사 정도. 대한적십자사는 일제강점기 이전인 고종황제 시절부터 '총재'라는 표현을 썼지만 2019년 5월 기관장 명칭을 '회장'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정작 한국은행은 유통되는 화폐를 다시 인쇄하는데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들고, 현금입출금기(ATM)와 자동판매기 프로그램까지 바꿔야 하는 문제점이 예상돼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총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여기에 지역을 대표하는 지사회장도 부를 때는 줄여서 '회장님'이다. 게다가 적십자는 10만 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소속된 단체이니 봉사회가 많고 봉사회가 많으니 봉사회장도 많다. 당연히 부를 때는 '김 회장님, 이 회장님, 박 회장님, 최 회장님' 등 모두 남녀불문 회장님이다. 그런데 어디 현직 회장만 회장인가, 전직 회장도 부를 때는 '회장님'이지. 여기에 응급처치와 수상안전 등 강사회와 RCY지도교수(사)협의회, 혈액봉사회 등 조직 명칭 끝에 '회'가 붙으면 다 '회장님'이다. 이렇다 보니 20여 년 간 여러 기관과 부서를 두루 거친 내 휴대폰에 회장님 연락처가 많은 것이다.
지난 금요일 밤 퇴근하고 집에서 아이랑 놀다가 카톡이 온 걸 뒤늦게 보았다. "팀장님!! 월요일 00 보리밥 12시 점심 초대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함께 해 주세요. ^.^."라고 원 봉사회장님이 점심 초대를 하셨다. 이날 결연을 맺고 있는 가족들과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나 보다. 같은 시간 제천에서 봉사회 임원 대상으로 헌혈 안내를 하기로 되어 있어 진짜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말씀드리고 조만간 제가 식사를 초대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회장님들이 좋다. 언제 만나도 불편하지 않고 또 만나고 싶은 회장님들이다.
참고자료
1. 2011. 8.27. 중앙일보 "돈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 명칭 살았다"
2. 2011. 8.17. 매일경제 "한은총재 이젠 한국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