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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Mar 04. 2023

비행단에서 본 헌혈하는 연인

출장을 다니면 간혹 재밌는 구경을 한다.


삼일절 다음 날인 3월 2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음 그것보다는).. 혈액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공군 00 전투비행단에 헌혈을 갔다. 버스 4대가 총출동했다. 내가 방문한 곳은 전투기를 정비하는 부대. 영내에서도 출입이 더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이다.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전투기가 저 멀리서 보였고, 창공을 가르는 전투기의 굉음에 귀가 멍멍했다. 격납고에서 정비 중인 전투기가 헌혈버스 옆에까지 왔다가 다른 격납고로 이동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그저 신기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재밌는 구경은 헌혈버스에 올라온 두 남녀 군인을 보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30여분쯤 지났을 무렵, 부대에서 헌혈 참여 안내방송을 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군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뒤로 두 남녀군인이 함께 헌혈버스에 올라왔다. 버스 안은 이미 대기자들로 가득해 둘은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뒤에서 보니 동료라고 하기에는 둘 사이가 왠지 알콩달콩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군인이 남자군인의 군복 옷매무시를 살짝 다듬어주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아~ 연인인가?


버스 안에 앉을자리가 없어 두 사람은 내내 서 있다가 미리 온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한 명씩 문진실로 들어가 자리가 생기면서 여자군인은 다른 여자군인 옆자리로, 남자군인은 다른 남자군인 옆자리로 잠시 떨어져 앉게 되었다. 그러다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여군 한 명이 문진실로 가게 되면서 함께 온 둘 중 여자군인 옆자리가 비게 되었다. 그러자 맞은편 자리 끝에 앉아 있던 다른 남자군인이 남자친구인 듯한 군인에게 “혼자 앉기도 좁다. 빨리 저리 가라"며 웃으면서 남자를 말로 떠밀었고, 두 남녀는 다시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리고는 남자군인이 먼저 문진을 받고 '통과', 여자군인이 이어 문진을 받고 '통과'. 남자군인이 먼저 헌혈을 마치고, 여자군인이 이어 헌혈을 마친 뒤 둘은 휴식실 의자에 다시 나란히 같이 앉았다.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우리 직원이 “기념품은 뭐로 고르실래요?"라고 물었더니 둘은 기념품 목록을 보았고, 그러더니 여자군인은 ”저는 기부권이요 “라고 말했다. 뒤에서 이 모습을 다 보고 있던 나는 "마음씨도 곱네"하며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재채기와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오늘 버스에 온 두 남녀 군인이 딱 그랬다. 함께 헌혈하는 연인도 드물지만, 헌혈버스에서 함께 헌혈하는 연인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서로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과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엿보게 돼 잠시나마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헌혈을 마치고 왔던 길을 함께 되돌아갔다. 이날 그 일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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