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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Dec 25. 2022

일 년간 매주 딸에게 그림편지를 보냈다

아이에게 매주 보낸 그림편지를 모아 보았다


참 희한한 일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림에 일절 관심이 없었고 이후에도 줄곧 보기만 하던 내가 40대 후반 나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말이다. 어머니도 말씀하신다. 학원도 한 번 다니지 않은 네가 그림을 그리는 게 신기하다고. 이 모든 건 아이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주말부부라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아빠였기 때문에 글을 읽게 된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손편지를 썼다. 예쁜 편지지를 사서 편지를 썼다가, 8번째 편지에 우연찮게 그려 넣은 작은 눈사람 그림에 아이 반응이 좋아서 이때부터 그림을 넣기 시작했다.


유튜브가 좋은 스승이 되었다. 유튜브에는 만화 캐릭터를 그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많다. 내 목표는 그 영상을 보고 편지지에 따라 그리기였다. 응용이 어디 가당키나 하던가. 그렇게 매주 내게 맞는 영상을 찾고, 아이가 알만한 만화 캐릭터를 바꿔 가면서 하얀 편지지 위에 그렸다.


색깔도 입혔다. 검은 펜 일색으로 하다가 16번째 피카츄부터 캐릭터에 맞는 색으로 다 칠하니 그림이 한층 화사해졌다. 이쯤 되니 금요일 밤 집에 도착했을 때 잠들어 있던 아이는 아빠 편지가 궁금해 내가 도착할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리게 되었다. 이후에는 내가 그리고 쓰고, 아이는 색칠하는 것으로 함께 만드는 재미를 더했다.


올해가 되면서 목표를 세웠다. 일 년이 52주이니 1년 간 그림편지를 매주 해 보자고. 일주일마다 마감이 있는 힘든 일정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면 끝난 이후에, 회식을 마치면 회식 끝나고 방에 돌아가서 그림편지부터 챙겼다. 그렇게 매주 한 편씩 한 편씩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니 55번째 편지에 이르렀다.


한 편의 편지가 완성되면 인스타그램에 올려두고 있다. 곰손아빠인 나를 두고 금손아빠, 자상한 아빠라고 불러주시는 분도 계신다. 아내가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내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많이 웃었다. 가끔 만화 캐릭터 공식사이트에서 찾아와 '좋아요'를 눌러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뿌듯하고, 흐뭇하고, 이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만든 편지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50번까지 해 달라고 했고, 그다음엔 100번까지 해 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해 달라고 한다. 그때까지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하는 데까지 하는 게 내 목표다. 지난달에 집 근처로 다시 발령받아 와서 그림 그릴 시간이 오히려 부족해졌지만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성장하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부딪쳐 보고, 경험해 봐야 내 것이 된다. 세상에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이제 나는 그림이라는 취미를 하나 갖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에게 보냈던 편지를 바닥에 펼쳐본다. 모아 놓으니 재산 불어난 것처럼 보는 것만으로 마음 부르다. 내년에는 아이에게 보낸 편지를 소재로 한편씩 글을 더해볼 생각이다. 그게 모이면 편지와 더불어 아이에게 선물할 묶음이 되지 않을까. 할 거리가 생겨서 분명 내년도 바쁠 것이지만 기대가 된다. 이렇게 한 해가 마무리된다. 올 한 해 수고한 나를 위해 토닥토닥. 올해도 잘 놀았다.





참고한 유튜브: 손그림 그리기, 루로95, 호롱도롱tv, 예뿍드로우, art for Kids Hub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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