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2008년 8월 말, 캐나다로 단기연수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웰랜드, 폰트힐, 나이아가라 등 낯설었던 이 동네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나이아가라 칼리지는 여름학기를 마치고 1주일간 짧은 방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우리 부부는 뭘 하지? 홈스테이에서 놀아야 하나? 먼저 온 한국 친구들에게 뭘 하면서 방학을 보냈냐고 물어보았다. 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어디가 갈만 하냐고 물어보니 뉴욕을 추천해 줬다.
유학생이 있는 곳에는 거의 여행사와 관광상품이 있다. 인터넷에서 뉴욕, 보스턴으로 가는 관광상품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 이왕 온 김에 구경도 실컷 하자.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 그런데 나이아가라에서 뉴욕으로 가는 코스를 보니 엄청 빡세 보였다. 편도로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데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버팔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가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항공도 직접, 숙소도 직접 예약했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방학 때 뉴욕을 다녀올 거라고 알렸다. 집주인은 집에서 버팔로 공항까지 곧장 가는 콜택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짐을 꾸리고, 드디어 디데이가 되어 우리 부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콜택시를 탔다.
"우리 이제 뉴욕 가는 거야?"
"그럼~~"
그런데 간과한 게 있었다.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너무 쉽게 보았던 것이다. 육로로 넘을 때 어떤 절차를 거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를 사전에 꼼꼼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택시 타고 공항까지 곧장 달려갈 줄 알았는데..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택시에서 내려야만 했다. 우리는 꼼꼼한 심사를 받아야 했다. 처음 닥친 일인 데다 긴장이 되어서 영어는 잘 들리지도 않고 말도 잘 안 되다 보니 상황은 더욱 암울해져 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 몇 시간을 대기한 뒤에 우리는 미국 입국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버팔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는 이미 떠난 뒤였다. 항공사 창구에 가서 다시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날 첫 비행기를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돈이 이중으로 안 들어가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공항 벤치에 누워 밤새 새우잠을 자고 첫 비행기로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은 정말 화려한 도시였다. 책 제목처럼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이기도 하고,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기도 했다. 미술관도 많고, 관광명소도 많았다. 머무는 동안 가급적 많이 다녀 보겠지만, 나는 와이프에게 뉴욕에 온 김에 한 곳을 꼭 가보자고 했다. 바로 미국적십자사 뉴욕지사였다.
연수를 출발하기 전에 직장 선배로부터 부탁을 받은 게 있었다. 선배는 응급처치법과 수상안전법 업무를 담당했는데, 혹시 현지 적십자사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영어로 발행된 최신 '응급처치법(First Aid)'책을 사 달라고 요청했었다. 적십자수품센터(적십자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곳)가 서울지사 내에 있듯이, 인구 팔백만이 사는 뉴욕의 적십자사에 가면 수품센터도 있고 책도 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3일 차에 뉴욕적십자사를 찾아갔다. 예상대로 수품센터가 있었고, 판매용으로 다양한 교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권만 해도 두꺼워서 무게 때문에 많이 사지는 못하고 2권만 구매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또 언제 여기를 찾아올 수 있겠어. 용기를 내서 나는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한국에서 온 적십자 직원이라고 소속을 밝힌 뒤 내부를 견학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오늘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서 내일 다시 와 보라는 답변을 들었다.
오늘 담당자가 없어서 안 된다라고까지만 들었다면 나는 그냥 마음을 접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일 다시 와 보라고 하니 '에라 모르겠다' 나는 다음날 다시 뉴욕적십자사를 찾아갔다. 어제 왔다간 사람이라고 얘기하니 현관 데스크 직원이 전화를 한 통 했다. 잠시 후 남직원 1명이 내려왔다.
그는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어제 왔다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그는 우리 부부를 친절하게 응대해 줬다. 1시간가량 강습실, 사무실, 재난상황실, 기자 브리핑룸을 구경했고, 운영시스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충북적십자사가 충북지역을 관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내 눈에는 이곳의 재난구호시스템이 상당히 선진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고 견학까지 시켜준 그 직원이 너무나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현관데스크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뉴욕여행을 마치고 캐나다가 돌아가서 사진과 함께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사무실 벽면에 대한적십자사 조끼를 게시하길 고대한다고 했다. 뉴욕적십자사는 지사를 방문한 각국 적십자사의 조끼를 게시하고 있었는데, 대한적십자사에서는 한 번도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나 보다.
3개월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사회장님께 뉴욕적십자사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함께 들려 드리면서 충북적십자사에서 조끼를 하나 보내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렇게 하얀색 조끼를 구입해서 뉴욕적십자사에 보냈다. 얼마 뒤 사무실 한쪽 벽면에 부착된 사진을 받았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과정을 함께 본 와이프도 나를 자랑스럽다고 치켜세워줬다.
개인 블로그에 이때 일을 짤막하게나마 올려 두었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 한 후배가 찾아와 "과장님, 얼마 전에 저 뉴욕에 다녀왔는데요. 검색하다가 과장님 글 보고 저도 뉴욕적십자사에 다녀왔어요."라고 했다. '아 이것도 도움이 되는구나.' 그 후 또 다른 후배 하나도 뉴욕에 갔다가 뉴욕적십자사를 방문했다는 얘기를 해 줬다.
그날 그냥 돌아가지 않고 견학을 하고 싶다고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짧은 글이라도 사진이랑 함께 올려두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항상 경험과 글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주변을 위한 것이기도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