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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Apr 01. 2020

국제적십자 나미나라공화국을 꿈꾸다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일이 재밌는가? 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란 곳에서 재미있는 일만 골라서 할 수는 없다. 기왕 하는 일 재미있게 하면 된다. 시켜서 하는 일보다는 스스로 찾아서 일하는 것이 발전적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더 몰입하게 되고 더 배우게 되고 나중에 더 큰 만족감을 맛볼 수 있다. 돌아보니 누구도 나에게 이 일을 하라고 시킨 적이 없었는데 내가 좋아서 뛰어든 일이 있었다.


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가 충북지역을 관통했다. 지금은 혁신도시가 인근에 들어선 진천군 덕산면. 당시 덕산면 소재지는 집중호우로 마을 둑이 터져서 물에 잠겼었다. 도로가 유실되고 가옥과 상가가 침수됐다. 충북적십자사 직원들은 적십자봉사원과 함께 1주일 이상 복구활동을 했다.


태풍 피해는 도내 북부지역에서도 컸다. 최북단인 단양군 영춘면의 피해가 접수되었다. 우리는 봉사원들과 함께 그곳으로 복구활동을 갔다. 전설에 고구려 장수 바보 온달이 쌓았다는 '온달산성'과 남한강가에 병풍처럼 늘어서 장관을 이룬다는 '북벽'으로 유명한 고장.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남한강 편'에 나옴). 아름다운 이 곳을 관광하러 왔다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는 그 북벽 맞은편 질퍽대는 밭에서 허리 숙여 구슬땀을 흘렸다. 내가 단양 영춘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3년쯤 지났나. 2009년 말, 라디오에서 남이섬 강우현 대표님의 방송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남이섬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유명한 관광명소라는 것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일개 섬을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로 변모시킨 강대표님이야말로 팍팍 튀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갖추신 분이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끌리는 마음에 조금 더 이 분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서점에 가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 <남이섬 CEO 강우현의 상상망치>를 사서 읽었다. 이 책의 앞부분 작가 연표를 읽는데, 충북 단양과 강원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영춘'이라는 벽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 이분이 여기 분이셨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감동도 있고 해서 메일을 보냈다.


책에서 읽고 옛 구호활동이 떠올랐다고 말하고 언젠가 멋진 남이섬에서 적십자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아내와 함께 남이섬으로 관광 가겠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곧장 답장이 왔다. 남이섬에 적십자?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시면서 외국인이 많이 찾는 나마나라에서도 국제적십자운동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좀 생각해 달라는 내용을 보내 주셨다. 이렇게 바쁘신 분이 답장까지 주시다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기분이 좋았다.


홍보란 게 뭘까.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보라고 하면 볼까.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에 노출하여 자연스럽게 적십자를 만나게 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던 때였다. 메일은 받았지만 내가 근무하는 기관이 본사도 아니고 강원도 경기도 아니라서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 해 5월 나는 아내와 남이섬을 관광했다. 그리고 구경한 소감을 담아 다시 한번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가을에 '평화이야기'를 주제로 세계책축제가 열릴 예정인데, 학생들의 자원봉사 실습장으로 활용해도 좋겠다는 답장이 왔다.


이쯤 되니 뭔가 기획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자료를 찾다가 2010년은 국제적십자운동의 아버지 앙리뒤낭(적십자의 창시자, 1828.5.8 ~ 2010.10.30, 제1회 노벨평화상 수상)이 서거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라는 걸 찾게 되었다. 연 200만 명의 내외국민이 방문하는 남이섬에서 앙리뒤낭이 평화를 염원하며(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책이라 그렇게 생각함) 쓴 '솔페리노의 회상'으로 세계책나라축제 참가, 평화의 섬 명명, 전시회, 수상 및 응급처치법 홍보 등의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담은 기획서를 만들었다.


본부에 근무하는 친한 동료에게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과정을 설명하고 기획서를 주고 왔다. 내 것이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의 일도 바빴을 텐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만들기는 어려웠을게 분명하다.


기획서는 또다시 내 컴퓨터 속에 잠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 가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안대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그래 여기 출품해 보자.' 회사에서 진행하는 제안대회에 이전 만들었던 기획서를 더 보강해서 제출했다.


그 결과 나는 공동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다만, 적절하고 구체적인 실시방법이 기술되어 있으나 제안된 사업 진행을 위한 시점이 문제라는 의견이었다. 아쉬워라. 사실 발표가 10월에 거의 임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의 제안은 실제 세상 밖으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날아간 화살이 다 과녁에 명중하는 것이 아니듯이,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게 다 결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조건이 잘 맞아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까 말까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입장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비록 결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때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스스로 기획한 일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많았다. 애정을 갖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서일까. 가끔은 이 일이 떠오른다.






<이미지 출처: 현대제철 쇠부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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