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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Mar 15. 2020

총알택시와 공짜택시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지금은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BMW - Bus, Metro, Walk)이었다. 백팩 하나 을러메고 15년을 그렇게 출퇴근했다. 청주에서는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서울 명동 본사를 다닐 때는 기차, 지하철, 버스를 탔다. 이동하면서 오디오파일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폰으로 기사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청주로 다시 내려오게 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고려해 운전하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곳이 회사까지 버스 연계가 잘 안 되는 데다가, 현재 근무하는 혈액원 주변으로 식당이 없어서 차를 타고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 엄마가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날 유치원에 간 아이를 급하게 데리러 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이때 서둘러 가기 위해서도 차가 필요했다.


물론 애매한 상황(조기 출근, 급한 일처리, 회식자리 등)에서는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그런데 때로는 불편하다. 불친절한 기사님을 만나면 내 돈을 주고 서비스를 받는데도 불편한 마음이 든다. 반대로 친절한 기사님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게는 직장생활 중 택시를 이용하면서 좋았던 기억 하나, 나빴던 기억 하나가 깊게 박혀 있다.


먼저 나빴던 기억 하나. 2016년 무렵쯤이었을 거다.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오송역으로 왔다. 서울역에서 11시 무렵 기차를 타고 오송역에 내려오니 얼추 12시가 다 되었다. 오송역에서 당시 집까지 택시를 타면 6~7천원 정도 택시비가 드는 게 일반적이다. 버스가 이미 끊긴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기차역에 줄지어 있는 택시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미호, 가 주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택시기사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근데 분위기가 싸했다. 택시 속도가 바로 올라갔다.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안전벨트에 가까이 가 있었다. 심야의 졸음은 날아가고 어느새 모골이 송연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숨 조리며 집 앞 큰 도로 앞에 도착했을 때 계기판에는 5,000원이 찍혀 있었다. 기대해본 적 없는 금액이었다. 택시기사님은 끝내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내려주고 휙 유턴하더니 되돌아갔다.


기차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기사는 장거리 이동자를 선호한다는 걸 나도 안다. 그 얘기를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했더니 오송콜택시를 알려줬다. 그다음부터는 늦게 내려오는 경우에 오송역에서 콜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아주 편했다. 하지만 그날의 충격 때문일까. 나는 웬만한 거리를 갈 때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 줄지어 있는 택시를 잘 이용하지 않고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엔 좋은 기억 하나. 2006년 초쯤일 거다. 내가 재원조성 업무를 할 때였다. 연초는 적십자회비모금 기간이라서 사무실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살던 동네는 순환버스가 다니는데 시간이 안 맞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택시비가 많이 나올 거리도 아니어서 택시를 탔다.  


"적십자사로 가 주세요."

"죄송한데..근데 적십자사가 어디 있지요?"


기사님은 택시일을 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적십자사 위치를 되물어 보셨다. 나는 도청 뒤편에 있다고 알려드렸다. (당시에는 충북도청 뒤편에 충북적십자사가 있었다) 기사님은 얼마 전까지 대기업에서 근무하셨다가 퇴직하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며칠 뒤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나와서 집 앞에서 또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며칠 전 만났던 기사님을 또 만난 것이다. 기사님도 나도 서로를 알아보았다. 이제 기사님이 적십자사 위치를 파악하고 계셔서 편하게 도착을 했다.


"두 번이나 만나다니 다음에 또 만나면 택시비 공짜로 해 드릴게요."

기사님이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셨다.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그런데 2주 정도나 흘렀나.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택시를 이용하였는데, 그 기사님을 또또또 만난 것이다. 서로 깜짝 놀랐다. 이게 뭔 인연이람. 이런 경우가 확률적으로 얼마나 되려나. 사무실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나는 택시비를 드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기사님이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킨다며 택시비를 받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분이 아침 일하는 동선과 시간이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랑 맞아떨어졌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후로는 그 기사님을 뵙지 못했다. 얼마 후 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 일들을 좋은 기억으로 갖고 있다.


<그림 :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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