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Apr 16. 2023

토요일 군부대 헌혈 출장기

주 5일 근무제 시대에 주말 헌혈이 주기적으로 가능한 단체는 단연 군부대다. 그만큼 군인들의 헌혈 기여는 상당하다. 내가 근무하는 혈액원에서는 매주 토요일 육군훈련소, 한 달에 한두 번 사단 신병교육대에 출장을 간다. 우리 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인솔하는데 이번 주는 내 차례가 되어 신병교육대에 가게 되었다.


사전 희망자를 조사했을 때 85명이 신청했다고 들었다. 이대로라면 헌혈인원이 제법 될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버스 1대로 제한된 시간 내에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간호사를 1명 더 배정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 사무실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군부대에 출장을 나갔다.


출입조치를 마치고 버스를 중대 옆에 세우고 진행을 도울 조교도 지원받았다. 무전기를 한 손에 들고 내려온 조교는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다. 조교에게 계급을 물으니 병장이라고 했다. 언제 제대하느냐고 물으니 한 달 남았단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말년 병장이 어찌 여기까지 다 나왔냐고 물으니, 병장들도 주말에 다 근무한다면서 그래도 헌혈 지원이 행정반에 있는 것보다 수월할 것 같아서 내려왔다 하여 서로 웃었다.


오전행사로 단체사진 촬영이 잡혀 있어 준비는 다 끝났지만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30분쯤 기다렸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병력을 보내달라고 했다. 버스에 첫 타임으로 한 번에 올려 보낼 수 있는 최대인원은 의자수에 맞게 8명이다. 쿵쿵쿵쿵. 계단을 서두르듯 내려오는 장정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고 곧이어 10여 명 되는 훈련병들은 일자로 내 앞에 섰다.


단체헌혈을 할 때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인솔자가 헌혈가능여부를 1차로 점검한다. 버스에 올라가기 전에 체크하지 않으면 결국 버스 위 문진실에서 퇴짜를 맞게 되기에 버스 아래에서 주요 사항만 빠르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예/아니오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골든벨 같다.

 

"신분증 다 가져오셨죠?" 첫 질문에서부터 훈련병들은 웅성웅성대기 시작했다. 내려오기 전에 제대로 전달을 못 받았는지 다들 신분증을 내무반에 놓고 온 것이다. 훈련병들은 다시 우르르 내무반으로 뛰어올라갔다가 조금 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고, 나는 다음 질문들로 확인을 시작했다.


"최근 문신 하신 분? 눈썹문신도요"

"없습니다." 팔뚝 문신한 훈련병은 있었지만 다들 6개월은 훨씬 지났다고 했다.


"군대 다녀오기 전 해외여행 다녀오신 분?" 외국여행을 다녀오면 한 달 이내 무조건 헌혈을 못한다. 이 질문에 두 명이 "아~~"하며 아쉬워했다. 탈락.


"헌혈주기 8주 안 지나신 분?" "없습니다"

"말라리아 헌혈 제한지역인 파주, 연천, 강화, 철원 등에서 거주하거나 최근 여행하신 분?" "없습니다"

"코로나나 독감에 최근 확진 되신 분?" "없습니다."

나는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제일 좋아한다.


복병은 다음에 나왔다.

"최근 약 복용하신 분?" 이 질문에서 여러 명이 손을 들었다.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라 부상이 더러 있다. 또한 내무반 단체생활이라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다. 병원 처방 감기약이나 진통제는 3일 간 헌혈을 할 수 없다. 어제저녁, 헌혈일 아침에 약을 먹었다고 했다. 네 명 다시 탈락. 그렇게 열 명 중 네 명 만이 차에 올라갔다. 부족한 자릿수만큼 나는 조교에게 "4명 더 보내 주세요."라고 곧바로 요청을 했고 조교는 무전기로 호출을 했다. 그렇게 인원이 줄어들면 나는 조교에게 말했고 조교는 듣자마자 인원을 계속 불러 주었다.


헌혈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니 빗방울이 두둑 떨어지기 시작했고 흙냄새가 짙게 올라왔다. 곧 비가 쏟아지려나 했더니 곧이어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가 많이 온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부대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12시경 오전 헌혈을 마무리하고 부대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오는 데다 이동시간이 있다 보니 1시간 점심시간도 빠듯했다. 그래도 비가 와서 그런지 닭개장을 하는 읍소재지 식당은 한산했고 음식도 금방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사서 부대에 들어왔다. 오후 일과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커피를 조교와 함께 마시며 병사들을 차에 올려 보낸 중간중간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은 월급 많이 나오죠?" 월급 얘기를 물으니 1달에 100만 원이 나온다고 했다. 게다가 이 돈으로 40만 원씩 적금을 들면 지원금도 30만 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잠시 따져보니 잘 모으면 제대했을 때 해외여행도 한 번쯤 다녀오고 대학교 등록금을 한 번쯤 낼 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오래전이지만 내가 군대를 다녔을 때 병장 월급이 1만 3000원이었다. 병장 때 분대장을 하면서 저축을 해 본 적이 없다. 월급을 받아 부대원들에게 PX 추진을 내면 한 번에 그 돈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달 100만 원씩 받으니 PX를 몇 번을 다녀오고도 저축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졌는가.


버스 주임님이 대기하는 훈련병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차 안 TV에다 영화 <007 시리즈>랑 <다이하드 4>를 틀어놓았더니 모두들 시선이 TV로 향해 있었다. 다이하드 4가 나온 게 2007년인데 F35 전투기와도 맞짱 뜬 브루스윌리스 형님은 정말 상상초월이다.   


오후에도 헌혈이 불가능한 제외자가 많이 나와서 헌혈은 3시쯤 일찍 마무리됐다. 헌혈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대를 했는데 인원이 적을 수도 있고, 기대를 안 했는데 인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주말마다 군인들이 참 큰 일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세 시는 근무교대를 하는 시간이라 하루를 같이 보냈던 조교는 우리가 마무리 정리를 하는 사이 행정반으로 돌아갔다. 다음에 내가 이 부대를 올 때에는 조교는 이미 제대하고 사회인이 되어 있을 것 같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해서 즐거웠다. 그렇게 모든 걸 마치고 부대를 떠날 때쯤에는 다시 내리던 비는 멈추고 햇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처음은 두렵고 긴장되기 마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