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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May 14. 2023

혈액원 직원들은 다 헌혈하시죠?

헌혈 섭외를 나가서 기관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혈액원 직원들은 다 헌혈하시죠?"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공자님이 그러셨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헌혈을 요청하러 온 회사 사람들이 먼저 헌혈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그런 통계를 본 적이 없어 직원들이 얼마나 헌혈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혈액원이든 헌혈버스이든 헌혈의집이든 어디서든지 근무지 가까이에서 헌혈을 할 수 있고, 업무 중에 헌혈하러 자리를 비운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며, 입사나 승진 시에는 헌혈 횟수가 반영되고, 혈액량이 부족하면 직원들이 먼저 문진실을 찾으니 일반인의 평균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하지 않을까 싶다.


"헌혈하는 사람?"


떠오른 김에 우리 부서원들에게 물어보았다. 단체에 헌혈출장을 나가는 우리 팀은 여섯 명. 두 명은 건강이 나빠 약을 먹고 있어 못하고, 여직원 두 명은 헤모글로빈이 기준치를 넘나들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 그때그때 다르고, 나와 과장님 한 명만 최근에 헌혈을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모두'란 없다. 골골대면서도 헌혈하고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해 속으로 씩 웃었다.


혈액원 직원이라면 헌혈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주류회사 직원이 자기 회사 주류를 마시고, 가전회사 직원이 자기 회사 가전을 쓰고, 자동차 회사 직원이 자기 회사 자동차를 타는 것처럼 혈액원 직원이라면 먼저 헌혈하고 남에게 요청하는 게 기본 중에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헌혈하는가 떠올려 보면 그건 혈액원 직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헌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 직장을 모르던 시절부터 헌혈을 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첫 헌혈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오래전이라 그때 왜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수업 중간에 잠시 교실을 벗어나는 즐거움(?)도 있고 친구들도 많이 하고 선생님이 좋은 경험이라고 권하셔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생 때 경험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군대에 가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인연으로 적십자를 알게 되었고,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입사하고 헌혈을 자주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간수치가 높아져 몸관리를 못한 때도 있었고, 헌혈 생각이 났을 때 병원진료를 받았거나 건강검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기가 안 맞을 때도 있었고, 내 마음이 나태해진 때도 있었고, 업무로 해외출장을 나가게 되면서 장기간 헌혈을 못하게 된 시기도 있었다.


2011년에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봉사원들과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은 수도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나오는 낙후된 곳이었다. 빗물을 받아서 쓸 정도로 시골이었다. 다녀왔더니 말라리아 제한 지역으로 1년간 헌혈이 제한되었다. 2017년 필리핀 태풍구호 모니터링을 다녀왔을 때도 장기간 헌혈은 불가능했다.


헌혈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나와의 약속으로 하는 거다. 필요한 사람에게 혈액을 줄 수 있다는 건 받는 일보다 나은 일이고, 아직은 내 몸이 쓸모 있고 건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다행이라 여기며 하는 거다. 그렇게 내가 헌혈을 하니 업무적으로도 남에게 당당히 권할 수 있다.


올해 들어 헌혈루틴이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도 나는 혈액원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직장을 다니는 동안 헌혈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먼 미래이지만 이 직장을 퇴직한 이후에도 건강이 허락된다면 헌혈을 계속 하다가 마무리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1인분의 삶이다.






사진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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