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Apr 23. 2023

줄을 넘어 얽매임에서 벗어나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아이 줄넘기 학원 잠시 보낼까?"라고 의견을 물었다. 같이 유치원을 다닌 친구는 줄넘기 학원을 다녔는데 한 달 만에 키가 1센티나 컸다면서. 아이하고도 어느 정도 얘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말은 그랬지만 뭔가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듯했다. 알아보니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교에 줄넘기 수업이 생겼다. 그런데 한 반에 30명쯤 되는 아이들 중 몇 명이 줄넘기를 제대로 못한다고 했다. 그중에 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단다. 남들은 다 되는데 자기는 안 되니 아이도 속이 상할 법도 했다.


"아니"

못하면 다 학원부터 떠올려야 하나?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못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지, 안 된다고 학원부터 쫓아가는 게 맞는 일인가. 아이에게 아빠의 생각을 말했다. 학원은 언제든 다닐 수 있으니 우선은 네가 직접 해 보고 정 안 되면 마지막에 학원 가는 것으로 하라고. 그러면서 아빠랑 함께 줄넘기를 하자고 했다.


줄넘기. 말 그대로 줄을 돌리고 줄이 돌아오면 폴짝 뛰어넘으면 된다. 그런데 줄을 돌리는 일과 폴짝 뛰어넘는 일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고 엇박이 나는 게 문제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처음에는 끊어진 줄로 연습하라고 했다. 아내가 아이용 아빠용 줄넘기를 두 개 사 뒀고, 내가 연습용으로 다이소에 가서 1천 원짜리 당근 줄넘기를 사서 아이 키에 맞게 줄을 끊어 주었다. 그리고 아파트 1층 통로에 가서 폴짝폴짝 뛰는 연습부터 시켰다.


제자리에서 뛰는 걸 잘했다. 10번 뛰어봐, 20번 뛰어봐, 30번 뛰어봐, 50번 뛰어봐 했더니 가볍게 잘 따라 했다. 아이도 괜찮았는지 "아빠. 이거 재밌는데. 나 매일매일 할 거야"라고 했다. 그날 밤 아이는 침대에 눕자마자 꿈나라로 갔다.


그렇게 내가 일찍 퇴근하면 나랑, 내가 늦게 오면 엄마랑 며칠 연습을 했다. 하루는 내가 출장 간 토요일이었는데 연습할 때 재밌는 일도 있었단다.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끊어진 줄인 줄도 모르고 "너 줄넘기 잘한다"면서 다가와 말을 걸었단다. 그렇게 아빠표 줄넘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가까이 다가가나 했다.


그런데 줄넘기 연습을 시작한 지 10일 흐른 지난 금요일,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아빠 나 오늘부터 줄넘기 학원 다닌다. 학원에 가서 한 번씩 뛰어넘는 거 세 번까지 했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띠잉~~ 뒤통수를 맞은 듯한 이 느낌은 뭐지.... 계속 안 되어 엄마랑 상의해서 결정했나 보다. 


아이는 학원에 한 번 가 놓고선 "선생님이 잘 생기셨고, 잘 가르치시는 것 같아"라고 하길래, 나는 아이에게 "아빠표 줄넘기 학원도 선생님이 잘 생기고 잘 가르치잖아."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줄넘기 학원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열심히 하면 다 잘할 수 있다고 하셨어"라고 하길래, 나는 아이에게 "그건 아빠표 줄넘기 학원 선생님이 너한테 이미 했던 얘기잖아. 학원 가니 똑같이 말하지?"

"응"


아이가 오늘 성공한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아파트 1층 통로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줄을 돌리는데 잘 안 된다.  

"학원에서 잘 되었는데 집에 와서 해 보니 잘 안 되지?"

"응. 학원에 거울이 있을 때는 잘 되었는데"

"원래 그런 거야. 학원에서 가르쳐주지만 바로 내게 되는 게 아니라고. 연습해서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선생님이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기 위해서 혼자일 때 열심히 연습하라고 말해 주었다. 이로서 아빠표 줄넘기 학원은 문을 닫았다. 어려운 일인 만큼 스스로 성취했을 때 기쁨이 더 큰 법이다. 아이가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 이왕 시작한 거 줄넘기를 잘해서 마음의 얽매임에서 빨리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나는 이제 아이가 얼마나 잘해 나갈지 옆에서 응원하면서 지켜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보없는 끝말잇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