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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l 12. 2023

헌혈에는 항상 변수가 많다

헌혈에는 항상 변수가 많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수는 작은 것부터 당일 헌혈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만든다.


군부대 헌혈 출장을 가려고 준비를 다 해놨는데 새벽에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군부대에는 당연히 비상이 걸리는데 하필 그날 가기로 한 부대가 미사일 관련 부대였다. 헌혈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아침에 받았다. 고등학교 헌혈 출장을 가려고 준비를 해놨는데 전날 귀가하던 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에도 났다. 애도 분위기에서 헌혈을 하기는 어렵다며 출발 두 시간 전에 연락이 왔다. 출장길에 헌혈버스가 다른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차량수리를 마칠 때까지 헌혈출장을 나갈 수 없어 예정된 출장을 취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름 장마철에 비가 너무 쏟아진다던지, 한낮에 날씨가 너무 뜨겁다던지, 겨울철에 눈이 너무 많이 내린다던지 하는 기상변화도 헌혈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두가 발생가능한 변수다.


대외적인 변수만 있는 게 아니다. 헌혈자의 몸상태도 변수다. 혈액은 동일한 원재료를 가지고 기계에 넣어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제품이 아니다. 멀쩡하던 혈압도 헌혈버스에 올라가면 기준치보다 높아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각기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이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최근에 행했던 일들과 먹었던 것들에 따라 헌혈이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헌혈은 당초 예정 인원과 실제 헌혈 인원을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 가급적 계획에 맞춰 헌혈을 마치려고 하지만 어떤 날은 현장 상황에 따라 예정 인원 보다 헌혈량이 부족하고, 어떤 날은 계획을 상회하는 일이 늘상 발생하곤 한다. 우리는 매일 이런 일상을 마주하고 반복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청주에 있는 J여고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여고는 변수가 많은 곳이다. 헌혈 희망자가 많아도 중간 문진과정에서 탈락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러려니~~'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놓고 가야 한다. 


“팀장님, 학교 가면 아이들한테 생리 중인 지 물어보실 수 있겠어요?"

“물어볼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럽기는 하지.”


아침 8시 헌혈 출장을 떠나기 전 여직원 P와 민망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것도 헌혈 현장에서 챙겨야 할 일의 일부분이라니 담당자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헌혈현장에는 인솔자가 꼭 따라간다. 군부대는 이왕이면 군대를 다녀온 직원이 가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는 그 학교 졸업생인 직원이 가고, 여학교는 여직원이 가면 대화도 잘 통하고 현장에서 대처하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같은 날 동시에 여고 2곳에 헌혈이 잡혔고, 고교 담당자는 여직원 1명이다. 이것도 중요 변수다.


헌혈자가 많지 않으면 학생들을 버스 위로 올려보네 간호사들이 문진 하면 그만이겠지만, 이날처럼 190명이나 되는 신청자를 시간 내에 마치기 위해서는 접수창구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줘야 하기 때문에 주의사항을 꼼꼼히 가르쳐 주려고 내게 물어보는 것이다.


여학교에서 학생들이 탈락하는 주요 요인은 헤모글로빈 미달이다. 전혈 헌혈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12.5mg/dL 미만이면 헌혈이 불가능하다. 평상시에도 그럴진대 월경을 할 때 혈색소 수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몸상태가 안 좋은 학생들을 무리하게 시켜서는 안 된다.


여직원 P는 자기 자리 컴퓨터에 앉아 주의사항을 뚝딱뚝딱 치더니 프린터물로 뽑아 주면서 "그냥 애들한테 헌혈하기 전에 꼭 읽어보도록 시키세요."라고 말하고는 사무실을 먼저 떠났다.


그렇게 J여고 헌혈의 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헌혈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학교에 미리 가 보건담당 선생님을 만나고, 교장 선생님께 인사하고, 학교로 진입하는 헌혈버스 3대 주차자리를 안내해 줬다. 그리고 직원 M과 현관에 테이블을 깔아 접수창구를 마련하고 준비를 마친 뒤 보건선생님께 학생들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2학년 학생들부터 현관에 우르르 내려왔다. 학생들이 신상명세서를 작성하고 내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오면 나는 학생들에게 건강 주의사항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이상 없으면 패드로 전자문진을 시켰다. 중간중간 학생들의 질문이 계속 날아왔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선생님, 어젯밤에 항생제 먹었는데 헌혈 안 돼요?"

"선생님, 아침 안 먹었는데 어떡해요?"

"선생님, 피어싱 했는데 어떡해요?"

"선생님, 2시 넘어 잠을 잤는데 헌혈 못 해요? “


'안 되면 되게 하라'가 어느 특수부대에 쓰여 있는 문구라면, 헌혈에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정도를 제외하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가 맞다.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들 모두 버스로 올라갔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버스에서 일찍 내려와 교실로 되돌아가는 학생들이 있다. 팔에 밴드가 붙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딱히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다.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 앞만 보고 스쳐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럴 일도 아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학생들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점심시간 무렵이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시작 시간에는 빗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3학년을 모두 헌혈버스로 올려 보내고 마지막으로 1학년이 내려왔다. 아이들이 내려와 줄을 선 채 이야기를 하는데 난생처음 헌혈하는 아이들이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목소리가 너무 활기차다. 교장실이 바로 옆이기도 해 너무 소란스러우면 안 될 것 같아서 학생들에게 다가가 "헌혈이 즐거워서 이렇게 목소리가 큰 거예요?"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니 "그거 아닌데요~~~"라면서 조금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했다.


비는 마구 쏟아져 이제 우산이 없으면 안 될 지경이 되었다. 학생들이 드문드문해졌을 때 나는 이제 우산을 두 개 들어 현관에서 버스로 가는 학생들 우산 씌워주고, 헌혈을 마친 학생들을 현관까지 다시 우산 씌워주는 일을 했다. 그렇게 오후 4시경 헌혈일과를 모두 마쳤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예상대로 2/3는 헌혈하고, 1/3은 되돌아갔다. 그래도 스스로 자원해서 찾아온 학생들이 얼마나 이쁘고 착한가.


이날 현장에서는 사소한 변수들이 있었지만 잘 대처하고 넘어갔다. 헌혈인원이 예정인원 보다 상회한 것도 잘 된 일이지만 무엇보다 단 한 명의 헌혈 부작용 없이 안전하게 끝났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좋은 일 하러 왔다가 혹여나 몸이 상하면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우리는 그것을 늘 조심하고 대비한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내 구두는 홀라당 젖었고, 양말도 축축하게 젖었다. 마지막으로 보건선생님께 헌혈결과를 얘기드리러 갔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하시고 잘 도와주시는 보건선생님께서 일주일 후에 휴직에 들어갈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앗! 큰일인데. 이거야 말로 돌발변수 발생이다. 그래도 선생님이 후임자에게 잘 인수인계 해 주실 거라 믿고 나는 빗길을 헤쳐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비가 많이 내려 구두와 바지가 홀라당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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