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영어 간판 'Shell'에서 한 글자 'S'가 고장 나면 정유회사가 졸지에 지옥(hell)이 되는 것처럼.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몇 주 전 아이 잠들고 육퇴한 밤에 '낭만닥터 김사부3' 최종 편을 보았다. 어두운 밤 산불이 병원으로 다가오는 위급한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산불도 산불이지만 내 눈에는 병원 간판 하나가 불이 나가 깜빡깜빡하고 있는 게 보였다. 병원 이름이 돌담병원인데, 마치 '돌병원'처럼 보였다. 뭐지? 돌아이 같은 의료인들이 모여서일까, 모난 돌 같은 의료인들이 모여서일까. 마지막에 미국에서 돌아온 윤서정(서현진 분)이 택시에서 내려 돌담병원으로 걸어가자,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듯 깜빡이던 간판이 정상적으로 켜지며 끝이 났다.
이걸 보고 나니 예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10월 10일 빈곤한 상병자를 진료하는 병원사업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전국 7곳의 병원을 운영하며 공공의료를 펼치고 있다. 나는 병원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감사실에 근무할 때 전국 병원을 여러 차례 출장 다닌 적은 있었다. 2016년 말쯤 서대문에 있는 서울적십자병원에 출장을 갔다가 일이 늦게 끝났다. 병원 부원장님이 이 동네 족발이 맛있다며 저녁 먹고 가라고 하셔서 함께 병원을 나오다가 병원 간판에 이상함을 발견했다. 큰 간판 중에 한 글자가 고장 나 있었다. 그런데 여러 글자 중에 하필 고장난 글자가 '십'자라니. 글자를 읽어보니 '서울적자병원'처럼 읽혔다. 적십자병원은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를 시행하는 병원이라 경영사정이야 늘 어렵기 마련인데 이런 어려움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문구처럼 느껴져 안타까움이 더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대적인 외부 리모델링 공사를 했고, 현대화된 외관과 함께 간판도 교체된 걸로 기억한다.
의사이자 인류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던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적십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이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2주만 지나면 적십자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된다. 적십자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등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그 등불은 간판의 등불까지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