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도 졸린 눈꺼풀은 못 들어 올린다.'라고 했다. 하물며 동네장사도 못 되는 내가 졸음과의 싸움을 이길리는 만무하다.
며칠 전에도 출장을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졸음운전을 했다. 정말 순간이었다. 장거리 출장을 나간 것도 아니고 3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시내 주행하며 귀원하던 중이었는데 몸이 노곤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졸음에 빠졌다. 다행히 곧바로 정신을 차렸지만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전날 보다 기온이 10도 이상 낮아져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다. 날씨도 춥거니와 바람마저 세찼다. 나는 고교담당 P와 함께 올해 3번째 헌혈을 실시하는 청주 C고등학교로 아침 일찍 출장을 나갔다. 예보를 듣고 나름 무장을 한다고 두꺼운 옷을 챙겼는데도 내 몸은 아직 겨울을 온전히 맞을 준비가 덜 되었는지 떨리기만 했다.
학교 운동장에 버스 3대가 나란히 주차되는 것을 확인하고 버스 트렁크에서 접이식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현관 복도로 옮겼다. 추운 날씨에 학생들을 맞이할 따뜻한 실내공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빈 교실을 내주시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런 공간이 없고 학생들이 버스를 잘 찾아가는지 중간마다 특이사항이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라도 버스에 가까운 현관 복도에 자리를 잡고 일하게 된다.
햇볕이 들지 않는 현관 복도는 냉기가 가득했다. 1층 계단 아래에 자리를 세팅하고 양쪽으로 열려 있는 유리 출입문을 닫으니 골바람이 멈췄다. 학생들이 오가면서 열어둔 것인지 학교에서 환기 삼아 열어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닫지 않으면 바깥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 문을 닫았다. 우리 자리가 교무실 바로 옆이었는데 조금 지나니 교감선생님께서 마시면서 하라고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뽑아주고 가셨다. 배려심 많은 간호사 K는 핫팩을 하나씩 챙겨주었다.
하루 일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학년 별로 반 별로 내려온 학생들을 맞이하고 간단한 주의사항도 안내해서 차량으로 올려 보냈다. 한 버스에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리면 안 되기에 중간마다 헌혈버스에 올라 확인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접수를 받았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되니 몸이 빨리 지쳤다. 그렇게 일을 보고 오후에 사무실로 일찍 귀원하다가 나도 모르게 졸음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단체헌혈을 담당하는 우리 팀원들은 운전이 필수다. 그리고 운전을 많이 한다. 우리는 단체에서 편리하게 헌혈하도록 찾아가는 헌혈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헌혈차가 도착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서 준비도 해야 하고, 점심시간에는 직원들을 태워서 인근에 식사도 나갔다 와야 하고, 인근 헌혈처에 연락하고 방문해서 때론 섭외도 해야 하고, 다시 귀원까지 하려면 운전은 계속 이어진다.
내가 근무하는 혈액원은 충북뿐만 아니라 경북 문경과 예천까지 커버하기 때문에 버스 기준 편도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지역이 네 곳이나 된다. 그러니 직원 중에 월화수목금 매일 출장이 잡힐 경우 운수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천 킬로는 족히 운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만 졸음운전을 하는지 알고 싶어 물어보니 직원들도 다들 경험하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누구는 졸릴 때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누구는 코가 뻥 뚫리는 졸음껌을 씹으면서, 누구는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누구는 음악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면서, 누구는 중간에 쉬며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졸음을 쫓고 있다. 나는 담배를 끊은 지 오래라 허벅지를 꼬집거나 졸음껌을 씹는데 간혹 졸음의 한계치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달리는 경우 딸꾹질을 엄청 해 대는 편이다.
가끔은 자율주행차가 세상에 빨리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핸들을 잡고 운전하지 않아도 목적지만 입력하면 알아서 데려다주는 미래의 자동차. 이 차를 고대하는 이유는 졸음운전 하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써서 하루 헌혈을 많이 받았다고 기분 좋아 하더라도 사고라도 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 원거리든 근거리든 출장 나가 있는 직원들이 현장에서 '오늘 마감하겠습니다'라고 헌혈종료를 알리는 메시지를 단톡방에 올리면 다소 투박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을 올린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안전 운전하세요', '조심히 귀원하세요'라고. 하루의 마무리는 헌혈현장이 아니라 직원들의 안전한 복귀에서 끝이 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일과는 나도 예외일 수 없다.
<출처: 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