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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금씩 그려본다

by 포데로샤


2021년 11월, 광주로 발령받고 주말아빠로 10개월 쯤 되었을 때 7살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한 주에 한 통씩 손 편지를 하다가 8번째 편지지 봉투에 눈사람을 살짝 그린 걸 아이가 좋아해 그림편지로 발전했고, 2023년 11월 말 100번째 그림편지까지 아이에게 전달했다. 100주 동안 빠짐없이 진행된 곰손아빠의 편지. 그림 초보자였던 나로서는 꽤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일이었다.


그런데 능력범위를 넘어서 너무 진을 뺐던 것이었을까. 100번째 편지를 마치니 그림을 따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림은 평소 취미라기보다는 한 주마다 돌아오는 과업에 가까웠기 때문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렇게 지난 1년 6개월 동안 스케치북에 단 한 줄도 긋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바닥난 에너지가 채워져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이제 그 피로가 조금 풀린 것 같다. 몇달 전 대전에서 개최된 반고흐 전시회에서 드로잉노트를 하나 사서 왔다. 그리고 6월 말에 유튜브를 틀어놓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만화 캐릭터를 조금씩 따라 그려보았더니 된다. 다행스럽게도 의무감, 숙제 같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그냥 다시 조금씩 해 보려고 한다. 잘 되면 내 취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살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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