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나는 펀드레이저가 되고 싶었다.
펀드레이저(Fundraiser)는 기금의 목적과 필요한 자금 규모를 분석해 개인과 단체의 기부활동을 독려하고 기부가 이뤄지도록 기획하는 직업 또는 관련 전문가를 일컫는다. 일명 모금전문가다.
입사 전부터 펀드레이징에 관심이 있었다. 이 분야가 점차 커질 거라고 봤고,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모금기관을 놓고 고민하다 적십자에 지원했다. (해외에 많이 나갈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적십자는 기부자도 많고, 기부금 규모도 큰 단체였다. 하지만 모금업무를 당장 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적십자는 순환근무제로 돌아가는 조직이었다. 모금과 집행이 동시에 가능한 조직이다보니 직원들은 모금부서, 사업부서, 관리부서를 순환하며 근무해야 했다.
처음 맡은 업무는 서무였다.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모금 관련 업무로 배정받길 원했다. 내가 근무하던 기관은 중소규모 지사이다보니 모금 부서가 별도 분리돼 있지 않았고, 총무부서에 모금업무 담당자만 1명 있었다. 입사하고 1년 9개월쯤 흘렀을 때 모금을 담당하던 선배가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드디어 내가 그 업무를 맡았다.
하고 싶은 일을 맡게 되니 신이 났다. 물론 모금은 기관의 재정이고, 조직 운영의 동력이라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때론 피말리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이미 예상했고, 각오했던 바다.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무를 하면서 모금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기부 관련 책을 사서 읽기도 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모금교육에도 시간을 내어 수강했다.
기부 관련 책이라고 했지만 사실 당시 시중에 책이 몇 권 나와 있지 않았다. 자료가 적다보니 미국에서 발간되는 모금잡지를 직구독해서 보기도 했다. 타 단체에서 진행하는 모금강좌를 몇 번 가 봤는데, 나와 업무연차가 얼마 차이나지 않는데도 벌써 전문가로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보니 부러웠다. 그 자리에 선 내 모습을 그려보면서 일을 했다.
정기구독했던 모금잡지는 기념으로 보관중이다.
하지만 내가 그리던 커리어패스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2009년 이후 구호, 사회봉사, RCY, 인사 등 사업과 관리업무를 연이어 하게 되었다. 모금과 사업을 두루 하면서 기부금이 어떻게 현장에서 집행되는지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모금업무를 한동안 다시 맡지 못하면서 그 자체만의 전문성은 단절되었다.
반면에 기부자도 만나고, 수혜자도 만나고, 봉사자도 만나고, RCY학생들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고, 공무원도 만나고, 기자도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경험만큼 이야기 거리도 많아졌다. 그 경험들이 글감이 되고 있다..라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정리해 본다.
한때 내 희망사항이 흔적으로 하나 남아 있다. 모금업무를 하던 2006년도에 의욕적으로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하나 만들었다. ‘기부발전소'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펀드레이징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정보교류의 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여차저차 사정으로 그리고 모금업무와 멀어지면서 카페는 만들어지기만 하고 자연스럽게 방치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회원은 4명에다가 워낙 글도 없었지만 2015년 이후로는 아무 글도 올라와 있지 않다. 성인 광고도 돌아다닌다. 마치 잡초만 무성하게 자란 버려진 수풀 같다.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는 이 사이트를 나는 왜 끌어안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온라인 카페 문을 닫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글 속에 그 추억만 고스란히 남긴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