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도종환 시인님이 충청미디어에 쓴 '김영회 회장님을 애도함'이란 글에서 어른이 평소 "나 죽으면 번거로운 짓 다 접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틀어놓고 듣다 가세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기에 이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습니다. 고인의 발인일이라 그런지 음률이 마음을 착 가라앉게 만들었습니다.
김영회 회장님은 충북지역에서 언론인으로 오랜 활동을 하셨고, 충청북도 부지사를 지내셨으며, 2006년 8월부터 6년 간 충북적십자사 회장을 맡아 회사를 발전시키셨습니다. 이밖에도 신채호 선생 동상건립추진위원장, 충북참여연대공동대표, 충북문화예술포럼대표 등 지역의 어른으로서 남다른 균형감각으로 굵직한 일의 중심에 계셨습니다.
처음 회장님의 성함을 듣게 된 것은 아내를 통해서였습니다. 아내가 한참 신문에 기명칼럼을 쓰고 있을 때 글을 잘 썼다고 직접 연락해 칭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에도 축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6년에 제가 근무하는 충북적십자사 회장님으로 취임하셔서 그때부터는 가까이에서 업무를 보고 배웠습니다.
당시 회비홍보 담당이었던 저는 구 건물에서 취임식이 열렸을 때 몰려든 기자들 사이에서 회장님 사진을 찍으려고 용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회장님이 적십자기 흔들 때를 포착해 사진을 마구 찍었습니다. 그때 잘 나온 사진을 액자에 크게 뽑아서 드렸는데, 두 달 전 찾아뵌 회장님 방에서 여러 사진 중 이 사진을 발견하고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회장님은 재임하시는 동안 큰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신사옥 이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새로운 백년대계를 위해 건물을 옮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적 감각도 남다르셔서 건물 요소요소를 회장님의 섬세함으로 탈바꿈시키셨습니다. 회사 앞마당에 있는 예술품들과 봄이면 피어나는 개나리, 벚꽃, 영산홍과 장미, 담쟁이까지 아름다운 정원 모두 회장님의 손길이 들어간 작품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이임식 송사를 저에게 맡기셔서 부족하지만 대표로 식장에 모인 분들 앞에서 낭송했습니다. 지금 다시 한다면 훨씬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퇴임하신 후에도 회장님과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항상 통화하면 아내와 아이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주셨습니다. 지난 11월에는 책이 나오고 회장님께 보내드렸더니, 책 세련되게 나왔다고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어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습니다. 존경하는 어른에 대한 예우이자, 적십자사 회장님으로서 소홀함 없이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양지바른 언덕 위 장지에서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렀습니다. 고인은 불과 며칠 전까지 충청미디어에 칼럼을 쓰셨습니다. 397회 '설날을 맞으며'가 마지막 칼럼이 되었습니다. 가신 자리가 허전할 듯 합니다. 김영회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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