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는 아직도 홍대병이 필요하다.

그들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홍대병의 항변

by 얼룩


홍대병은 힙스터(Hipster)의 한국 현지화 명이다. 사람들은 홍대병을 흔히 대중문화를 배척하고 마이너 한 자신의 취향만을 고수하며 그것이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홍대병으로서 발언하자면 홍대병들을 이런 식으로 집단으로 규정하여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다. 이것 또한 구분 짓기 좋아하는 대중문화의 산물 같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여기서는 홍대병 외의 자들)은 홍대병이 문화적 우월감을 과시하고 대중문화의 추종자들을 멸시한다는 점을 근거로 그들을 욕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는 홍대병으로서 그런 질문을 참을 수 없다. 그럼 홍대병은 나쁜 것인가? 당신이 내가 규정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를 당연한 질문이라 여길 것이고, 홍대병이라면 다양한 생각과 대답들이 솟구쳐 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홍대병으로서 홍대병들의 생각은 예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방금 질문에 “예”라고 답한 사람들에게 묻겠다.


홍대병이 왜 나쁜가요?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변이 존재하겠지만, 나도 당신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 답변들을 함부로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부분에 있어서 당신의 답변에 홍대병으로서 항변하고자 한다.


지금부터는 홍대병의 발언시간이다. 나는 홍대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넘어 이것이 인간세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인류의 역사에 있어 큰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니 나의 발언 시간을 존중해 주길 바라며 또한 여러분의 발언시간도 댓글을 통해 존중하도록 하겠다.


그래서 내 주장을 정리하자면,

이 시대에는 아직도 홍대병이 필요하다.




1. 홍대병의 기원


최초의 홍대병을 찾기 위해선 기원전 470년에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바로 홍대병의 아버지이다.


첫 번째로, 그의 가장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는 홍대병의 영원한 신조이다. 이 말은 원래 그리스 신화 속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쓰여 있던 말이었다. 이는 당시 그리스 인들에게 ‘네가 인간임을 잊지 말고 신의 자리를 탐하려 들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즉, 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그리스 인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억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홍대병이라면 이렇게 모든 이들의 생각을 획일화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반발해야만 한다. 홍대병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 역시 이 말을 다시 재정의함으로써 반발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진리 탐구의 첫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즉 대중들(신과 그 추종자들)의 눈치를 봐서 이런 해석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삶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과 취향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홍대병들이 자기만의 것을 추구하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홍대병은 병이라기보다 오히려 건강한 사회현상임이 분명하다.


수천 년이 지나 현대에서도 홍대병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그의 가르침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홍대병들의 이런 태도는 소크라테스의 그것처럼,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리를 찾으려는 진정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홍대병의 궁극적 지향이고 영원한 신조이다.


다만 이러한 홍대병적 지향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멸시의 방법을 택하는 것까지 옹호하고 싶진 않다. 무작정 남을 멸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그렇게 멸시하는 순간 당신의 생각은 절대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또한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스스로 그의 주장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의 방식은 허세와 과장 그리고 멸시가 아니었다. 따라서 더 많은 이들에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홍대병을 전파하기 위해선 멸시보단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두 번째, 소크라테스가 감내한 사회적 비판과 죽음은 홍대병의 완성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그의 가르침과 깨달음은 전적으로 신과 추종자들로 대표되는 기존 사회의 질서와 권위에 완전히 반하는 것이었다. 즉 그는 신이라는 지배자와 지배자의 추종자들이라는 다수 사이에서 그들의 통념에 도전하는 소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언동은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재판 끝에 그는 스스로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단순히 한 시대의 반항아가 사라진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자신만의 영원한 메시지를 남겼다. 다수에게 반항함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 그리고 어떤 것에도,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홍대병의 본질이자 완성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선택과 홍대병적 사고는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세계에 반항하는 인간과도 닮아있다. 이는 죽을 만큼 간절한 진리를 위해 부조리와 죽음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당당한 반항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그의 선택과 홍대병을 삶의 의미를 끝까지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실존적 실천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홍대병은 다수와 다른 지향을 추구함을 통해 신이나 운명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발버둥이다. 이 발버둥은 필연적으로 주변의 세계와의 불화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발버둥에 포기는 없다. 그것이 바로 홍대병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2. 홍대병의 부활, 르네상스


앞서 설명한 홍대병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가 죽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홍대병은 신이라는 이름하에 사라졌다. 중세에 접어들며 수많은 홍대병들은 신의 명령을 어긴 마녀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완전히 배척되고 심지어 죽음까지 경험해야 했다. 신본주의라고 불리는 이러한 시간은 100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16세기,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기에 접어들어서야 홍대병의 부활이 시작된다. (사실 이 부활은 고대 그리스철학의 부활이기도 하기 때문에 홍대병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의 영향력이 지대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오랜 시간 획일화된 규범에 억압받은 홍대병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자유분방한 자기표현적 욕구를 표출하는 선언이다.


르네상스에 접어들어서도 아직 신본주의라는 거대한 규칙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사상가와 예술가로 대표되는 홍대병들의 집단적 반항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를 홍대병의 부활이라고 칭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홍대병의 부활은 역시 부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예수와 성모마리아뿐인 통제받던 예술에서 인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신학이 아닌 철학이, 운명이 아닌 과학이 시작됐다. 르네상스 시대 홍대병의 반항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끊어진 홍대병의 뿌리를 다시 견고하게 만들었고 이는 이후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의 결과까지 이끌어냈다.


여기서 중요한 홍대병적 이념이 도출된다.

사회에서 금기하는 것에 대한 도전.


홍대병은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금기하고 소외된 것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지켜낸다. 사회에 금기하는 것에 대한 도전을 통해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르네상스의 정신이 바로 홍대병 감성의 원형이다. 보편성을 거부하고, 금기에 도전하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 홍대병적 이념은 인간 세계에 깨달음과 진리를 비춰준다.


르네상스의 노력이 시간이 지나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에서 결정을 맺은 것처럼 세상과 거리를 두며 자기만의 진실과 지혜를 찾으려는 홍대병의 고집스러움과 진지한 자세는 세계의 빛과 소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집과 진지함은 다수의, 특히 현재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다수의 입장에서는 소음일 뿐이기 때문에 홍대병에게 고독과 쓸쓸함, 외로움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는 것, 사회에 금기하는 것에 대해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홍대병의 사명이다.




3. 홍대병의 시조새, 몰리에르


짧은 르네상스 이후에도 세계는 신본주의와 절대왕정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르네상스 시기 홍대병들의 노력 덕분에 점점 세계에도 많은 홍대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 17세기가 되자 내가 홍대병의 시조새라고 정의하는 몰리에르가 탄생했다.


나는 몰리에르를 완성된 홍대병의 전형이라고 칭하고 싶다.


몰리에르는 17세기 프랑스 희극 작가로 희극을 통해 사회의 위선과 모순,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왕과 귀족들로 대표되는 다수가 보는 눈 바로 앞에서 그들이 세운 질서와 규칙의 위선과 비합리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 이유야 이렇지요. 희극 <스카라무슈〉는 신과 종교를 다루고 있는데, 저 양반들은 거기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거든요. 하지만 몰리에르의 희극은 바로 저 양반들 자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견디질 못하는 겁니다.」

몰리에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만, 안정된 삶을 거부하고 연극, 그중에서도 희극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선택했다. 희극을 향한 그의 열망과 열망에 따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그의 선택에서 이미 다수나 보편성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지 않는 홍대병적 성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들을 공개적으로 행하기 시작한다. 그 방법이 바로 다수의 위선을 비꼬는 희극이었다. 사회적 다수를 향한 그의 풍자와 비웃음은 부조리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며 절대 우회적이지 않다. 이러한 몰리에르의 홍대병적 고집은 세상과 불화하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이에 따른 신성모독이라는 비난과 격렬한 탄압은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감수했다.


몰리에르에게는 앞서 정리한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고집, 사회의 금기에 대한 도전, 이에 따른 책임의 감수라는 홍대병의 3 요소가 모두 드러난다. 그리고 그가 포기하지 않은 신념이 이후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된 점까지. 그런 그에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이자 시대와 정면으로 맞선 홍대병의 시조새란 칭호를 붙이고 싶다.




4. 이 시대에는 아직도 홍대병이 필요하다.


자 이제 드디어 결론에 도착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도 홍대병이 필요하다. 홍대병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고 긴 시간이 지났지만 보편성에 반항하고 소외된 것에, 금기된 것에 눈길을 주는 홍대병이 이 시대에는 아직도 필요하다.


인류의 문명과 기술은 매우 크게 발전했지만 사회는 아직도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이들을 허세와 자기 과시로 인식한다. 왜 사회는 아직도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만의 취향과 생각을 고집하며 기존의 틀에 도전하는 홍대병을 병으로 칭하는가. 그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 우리 사회 또한 모두가 비슷해지기를 요구하고 남들과 다른 이를 소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사회에서 홍대병들의 병이 심화될수록 홍대병의 전염성이 높아질 뿐이며 더 많은 홍대병 환자들이 생겨날 뿐이다. 그러니 만약 홍대병이 정말 사회의 병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홍대병에 대한 무시와 비난은 기꺼이 병든 사회가 되는 스스로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아직 세계에는 모두가 A를 말할 때 B를 말하는 이가 필요하고, 세계에 대한 홍대병의 반항이 필요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답을 타파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는 그들이 다음 세대에 뿌린 혁신의 씨앗을 무시할 권리가 없으며, 계속해서 다름을 꿈꾸는 홍대병의 사회를 지향해야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아직도 홍대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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