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집 농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렷 경래 Nov 22. 2023

거룩한 배통

당연히 순종하고, 몰라도 순종하고, 좋아도 순종하는 거룩한 순종


거룩한 배통

                                                        김경래



간밤 불룩한 헛배로

잠 반 부대낌 반 했다

배에게 지나친 안부를 물은 까닭이다


대답이 늦는, 결핍에 관한 물음에

본능은 좀체 사정을 꼭꼭 숨긴다

배꼽 주위에 정교하게 열리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제례예식,

명분은 늘 식욕에 감추었다


먹는 일만큼 눈부신 순종이 또 있을까

하루에도 세 번 위장을 통과하는 육체의 예배

일 년을 통 틀은 천 번의 제삿밥이다

자고 나면 숟가락을 배회하는 신전 앞 행렬

크고 작은 신고식으로 로맨스다

먹성으로 해결될 수 없는 즐거운 저자세

배에는 난파된 적 없는 천국이 새겨져 있다


배꼽 주위로 설치 허가된 시계 초침이

수족을 떨게 하는 복종으로 찰칵거린다

수족이 마무리하지 못하던 건

음식의 입 벌림이었다

흔들고 깨우고 내던지는

권좌가 익숙한 마무리

몸통의 지존으로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배꼽이 역시 상전이다

참으로 거룩한 배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