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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집 농담

거룩한 배통

당연히 순종하고, 몰라도 순종하고, 좋아도 순종하는 거룩한 순종

by 차렷 경래


거룩한 배통

김경래



간밤 불룩한 헛배로

잠 반 부대낌 반 했다

배에게 지나친 안부를 물은 까닭이다

대답이 종종 늦는, 결핍에 관한 물음에

본능은 좀체 사정을 꼭꼭 숨겼다

배꼽 주위에 정교하게 열리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제례예식,

명분은 늘 식욕 뒤에 숨는다


먹는 일만큼 눈부신 순종이 또 있을까

하루에도 세 번 위장을 통과하는 육체의 예배

일 년을 통 틀은 천 번의 제삿밥이다

자고 나면 숟가락을 배회하는 신전 앞 행렬

크고 작은 신고식의 로맨스다

먹성으로 해결될 수 없는 즐거운 저자세

배에는 난파된 적 없는 천국이 새겨져 있다


배꼽 주위로 설치 허가된 시계 초침이

수족을 떨게 하는 복종으로 찰칵거린다

수족이 마무리하지 못하던 건

음식의 입 벌림이었다

흔들고 깨우고 내던지는

권좌가 익숙한 마무리

몸통의 지존으로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배꼽이 역시 상전이다

참으로 거룩한 배통이다.




안부캘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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