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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집 농담

커피 마실 자격

커피 한 잔에 하루를 붓다

by 차렷 경래

커피 마실 자격

김경래


지나온 하루 행방의 그림자를

책장 넘기듯 뒤적이다

나른함의 질량을 이기지 못한

몸무게 주가 곡선 추가 항목 하나 더

저울앱에 올라 저장시켰다

입담을 무기처럼 교류하던

우리의 급발진 용비어천가

치실 사이에 재갈물리고

습작의 여전한 꼬리표들은

지우개 끝 빗자루처럼 매달린

질서라는 명목에 빛을 바래고 있다

수직추처럼 매달렸던

업적의 과열된 과표 무더기를

이제 질문과 질문으로 꿰매어

진열창으로 입고해야겠다


심지가 긴 전철의 막칸에

낯선 이의 커피 향을 기억한다

환승역에 둔 조바심으로

근황을 물어오던 그리움이다

보안이 충실치 못한 텀블러 칸막이로

에스프레소 향이 방출될 때

난 반숙의 바람으로

터트려야 할 종기 앞에서

상처만 만지작거렸지

내려놓을 것에 대한 집착이

일으켜야 할 숙제를 쟁여놓듯이

지극히 당연한 사연을

지극히 중독된 커피컵에서 발견하는가.



해설/ 향에 목말랐던 추억


커피를 소재로 많은 글과 시가 탄생했고, 지금도 탄생하고 있답니다.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지 모릅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고, 노래하고 공부하고, 모이고, 나눕니다.


마찬가지로 퇴근 후 반드시 커피 한잔을 합니다. "커피 마실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눌렸던 감각이 살아나고, 사랑의 농도가 진해집니다. 퇴근하면 지나온 길목과 전철에서 은근히 맡았던 낯선 사람의 커피 향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벼르던 저녁의 커피 한잔이 하루는 정리합니다.


퇴근 전철에 몸을 싣고, 앉은자리에서 곧 잠이 들면 하루는 뜀박질을 멈추죠. 부품처럼 기업의 톱니바퀴를 돌렸던 근력이 겨우 옆자리의 커피 향에 무너졌던 것은 너무 시시하지 않나요?


작은 것에 의한 큰 것의 회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세상에 많이 널려있습니다. 사랑이 죽음을 멈추게 하고, 한마디 말이 좌절한 영혼을 일으키며, 선물로 받은 책 한 권이 인생의 밤을 밝혀주었듯, 문득 옆자리 낯선 이의 커피 향으로 하루라는 무게를 던져버릴 수 있었던 것은 놀랍습니다.


아무쪼록 커피는 앞으로도 쭉 사랑입니다. 동음이의어는 커피와 카페인, 또 맛은 멋이라는 의미를 형상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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