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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Jan 07. 2021

우리는 부끄러운 크리스천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 정지용 시인 / 영화 동주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곳 교민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필 때가 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는 이곳 캐나다에 온 한국인의  출신과 신분 또한 워낙 다양해 천차만별의 구조이지만, 그래도 크게 상반되는 두 가지 경우를 본다.


떠나온 나라에 대해 아예 무관심하고 내 앞 일에 바쁜 그룹과, 반대로 지나치게 촉수가 향해 있는 경우다. 대체로 전자가 우세하다. 그럼에도 무슨 큰일이 나면 너도 나도 소식을 챙겨 듣는 일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최근에 뒤늦게 듣고 분노하는 사건이 있다. 정인이 사건이다.  입양한 아이를 때려서 죽인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양부모 모두 겉으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양쪽 부모가 모두 중견 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기독교 대학의 대명사인 한동대의 캠퍼스 커플이었고, 양부의 직업이 기독교 방송국인 CBS의 직원이었다. 한편 학대 사실을 알고도 감싸고 모른 체하던 양모의 어머니는 교회 담임목사의 사모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명성교회엔 김하나 목사가 예상했던 대로 교회 담임목사로 돌아왔다. 대체로 사람이 절대적인 욕심에 사로잡히면 명분이나 인정이나 정도를 버리고라도 그것을 획득하고자 한다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이미 손가락질하면서 비판하는 일을 공공연하게 저지르는 그 조직적 뻔뻔함은, 순수함과 양보와 십자가로 표징 되는 크리스천의 이미지를 모두 날려버렸다. 자기만 욕먹지 않고 기독교 전체가 욕먹게 해 놓고 자기는 잘했다고 자족하고 있다. 학력을 속여서라도 목적을 달성했던 한 대형교회의 목사의 경우처럼, 세월이 가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전광훈 씨는  1심 무죄 판결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입에서 "하나님 너 까불면 죽어"나 “여 성도 팬티” 종류의, 그의 입을 통하지 않고는 듣기 힘든 말들을 또 접하게 될 것 같다.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교회를 10년간 담임하던 S목사는 교회에서 퇴출된 지 이제 몇 개월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떡잎부터 잘들 알아보는데,. 우리 교회에 부임하기 전부터 그의 나쁜 기질을 난 먼저 알아봤다. 인사권에 대한 전횡의 일종으로, 예배 시간에 화가 난다고 장로를 해임하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던 것이 퇴출의 발단이었다. 시간 내고 재물을 바쳐 헌신하는 봉사자의 순수한 사역을 "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비하했었다. 열정과 실력이 없으면 인격이라도 좋아야 했다. 대기업의 오너가 중역 회의에서나 하는 행위인, 회의 중 성에 안차면 책상을 치고 밖으로 나가는 일을 나이 지긋한 장로들 앞에서 아무렇치도 않게 하곤 했다. 목사인 형제가 S 목사 외에도 몇 명이나 있는 장로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목회자에게는 실력과 열정과 노력이 절대 타고난 기질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다. 토양이 좋아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잠깐 박수받고 튀어봤자 10년의 세월 속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기질이 되고 나서야 실력과 노력과 열정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교인끼리 하는 카톡방에 있다 보면 숨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감정이 이입되는 무언의 갈등이 버티고 있다. 인간의 속성이고, 어디 교회 만의 현상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랑으로 모인다는 교인들의 모임에서, 비록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 판단하고, 욕하고, 무시하는 일은 극을 달린다. 나라도 그 위기를 깨는 역할을 하자고 글 하나 올리지만 썰렁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건네 오는 안부 인사에 작은 반응조차 없는 크리스천의 모임에서 생명력을 찾으려 하는 건 큰 오산이다. 입맛에 맞는 설교를 주문하고, 미운 놈 있으면 그 교회 출석을 포기하고, 함부로 판단하여 말을 옮기고, 성질에 안 맞으면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격한 하류의 속성을 크리스천이라는 명패를 달고 우리는 버젓이 행하고 있다. 미신적인 신앙관을 함부로 교회로  끌어드려 순수한 신앙인을 옥죄는 일은 비일비재다. 새벽기도 참여를 놓고, 잘 참석하는 사람은 오지 않는 사람을 비판한다. 한때 같은 교회를 다니던 분이 풍을 만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주위의 몇 사람은 그가 목사를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신과 접목된 지극히 잘못된 신앙관에서 나온 발언이다. 건전한 비판과 건의가 통용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목사가 “목사를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라고 공공연히 설교하는 일도 많다. 우리는 사람을 섬기지 않는 것으로부터 신앙을 시작하는데, 어느새 목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동의어로 알아채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크리스천을 찾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내 속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진상을 깨닫기 어렵지 않다. 크리스천의 비행이 뉴스를 도배하는 일을 보지 않고 지나는 하루가 참 희귀해졌다. 교회만 다녔지 삶이 신앙과는 먼 사람이 주위에 너무 많다. 목사들이, 신앙의 선배들이, 먼저 성경을 배운 사람들이 겁 없이 행하는 민낯의 부끄러움이 젊은 층의 교인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

코로나를 신앙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도 두지 않으려는 시도가 대세지만, 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우리를 이전의 상태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백신으로 이젠 다 끝나간다는 말은 크리스천에게는 착각이다. 어쩌면 이 코로나는 불순물을 다 태우는 용광로의 불처럼, 우리가 쌓아 올린, 순수 보다 더 비대한 불순(不純)을 끝내고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다시 시작하게 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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