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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Oct 19. 2023

멕시코행 비행기 안에서의 질문


비행기를 타면 늘 잠에 취한다. 고소취침증 같은 용어가 있어서 이런 현상을 일종의 병으로 부른다면 그도 그럴 것 같이 특이하다. 밴쿠버에서 한국으로 향하던 수년 전 12 시간을 일반석 앉은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잤다면 말 다한 사건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지 않은 특이한 증상을 멕시코를 향하는 보잉 737 안에서 예외 없이 오늘도 겪고 있다. 다행히 중간에 깨서 이렇게 글이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꽤 오래 쓸 것 같지 않아 서두르는 편이다.


6년 만에 휴가를 떠난다. 멋지지 않은가? 노는 일 멀리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남이 하는 것 다 따라 하지 않고, 굳이 무리하며 일상의 중단을 감행치 않았다. 이미 그런 최고의 휴가처에 살고 있지 않은가. 세계적인 자연 도시이고 공원 자체다. 또 멀리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도 한몫한다. 만 곳 다녀와봐야 사는 이곳이 제일 좋더라. 획일적이고 공통분모의 고백 일색이다.


그렇게 6년 만에 여행을 떠난다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나는 스스로, 이에 관해 멋지지 않냐고 확신적 질문을 던진 것 같다. 뒤돌아보면 길고도 지루하기 짝이 없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마친 그 장구한 시간을 다른 세상 한번 격지 못한 것이 뭐가 잘한 것일까? 그것은 현실에 안주해 새로운 도전 조차 하지 않으려던 게으름의 흔적 아닐까? 그 6년 기간 동안 이루었다는 스스로의 업적이, 일상의 중단이 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 업적이라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업적이란 불가능한, 혹은 최소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공들인 노력 끝에 달성하고 붙여진 칭호다. 운명과 세계와 자연질서와 신의 손이 나를 앞세워 합작으로 이루어낸 일이라면 그건 나의 업적은 아니다. “뭔가 해냈다”라고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여행의 텃밭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하지 않는다. 6년은커녕 일 년이 두 번  한 달씩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섬을 널러 갔다고 하더니 다른 날은 로키 산맥을 타고 있다고 알려온 친구도 있다. 다 멋진 일이다. 인생을 알차게 살아온 사람이 조기 은퇴해 여행을 다니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이다. 차마 따라갈 수 없어, 일종의 시샘으로 응대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의 삶은 동경의 대상이다. 혹 모르는. 일이다. 나라고 은퇴 후 미친 듯이 자연과 여행을 다니며, 하지 못한 일을 하느라 분주할지 모른다.


인생에게 주어진 100년의 삶을 풍요로 채우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저 여행이니 혹은 일이니 하는 것으로 판단하자는 말은 아니다.


여행도 노력이다. 무엇인가 변화를 찾아 애쓰는 모습이고, 한결같던 삶을 놓을 줄 아는 결단력이다. 일시적 중단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포기나 절망의 결과물이 아니라면, 그는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멀리 더 빨리 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여행과 휴가를 반납하고 일에만 몰두했다고 치자. 그것은 반대로 결단력의 부족, 혹은 도전 의식의 결여가 아닐까? 모두에게 다 똑같다고 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말할 수 있다. 과정과정마다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희생을 감수한 일이기도 하고, 멈추고 싶은 욕망이 앞섰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일로 쉬지도 않고 달려가 이루었다면, 꼭 잘했다고 하기는 부족하다. 잊고 있었던 희생의 조건들이 숨어 있었음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면, 그것은 무척 가슴 아픈 깨달음이 될 것이다.


세월은 가고,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늙어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일 죽음에 한발 가까이 가는 일은 하는 우리다. 그렇다면 과정을 아름답게 할 필요가 있다. 가정을 위해, 회사나 어떤 단체를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희생했다고 쳐도, 내게 남는 것은 허무일 때기 있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온 시간의 끝에서 나로부터 손가락질당한다.


누리고 더 경험하는 일은, 죽음으로 저절로도 향하는

삶의 순간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인 것이 맞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에 다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의 철학을 적용하지 말아야겠다. 그것은 무지다. 중단 없는 일상으로의 고집은 나의 인생에 이젠 끝이라 선언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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