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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Jan 29. 2021

내가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오늘의 나를 즐길 수 있다면  기꺼이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

방송의 갑질은 화려한 무대와 대중으로의 파급력에서 나온다. 당근을 걸어놓으면 달려드는 떼들은 많다. 당근은 출세와 돈이다. 대부분의 '을'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돈과 시간만 소비하고, 목마른 갈증을 이용해 '갑'은 화려한 방송으로 광고수익과 시청률 올리고, 궁극적으로 몇 명의 가수와 심사위원들 유명세 올려주면 되는 것이다. 이리저리 먼 길 불려 다니지만 수확은 교통비도 안 나오는 가여운 음악인들이 너무 많다.

이 무리들은 여러 인터뷰에서 말한다. “열등의식”과 “패배감”, 그리고 배고픔을 밥 먹듯 하여 왔다고. 높은 산을 설정해 놓고 남보다 더 오르지 못한 자신을 비관하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글 쓰는 사람도 그렇고, 예술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의 직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최대한 즐길 준비를 갖추지 않고는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확률이 높다. 자기 돈 들여 책과 음반을 내고, 갤러리 빌려 전시회 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독자와 관객 삼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본다. 그리고 그렇게 남 눈치 안 보고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이 멋있게 보인다. 음악과, 글과 예술에서 당근을 없애고 스스로 기뻐하는 분량에 머물겠다는 결단은 몸에 좋은 쓴 약을 먹는 것과 같다.

신춘문예 글 한 번으로 성공한듯한 수많은 작가 후보생도 활동을 계속하는 확률은 지극히 낮은 이유가 있다. 바로 저력이 받쳐주지 않는, 단발적인 작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신춘 작가는 대체로 지속적으로 쓰는데 실패한다는 통계, 저력은 삶의 깊이와 연륜에서 나온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모든 직업에 대한 평가 보고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일 돈 못 벌고 단명하는 직업으로 작가 - 정확히 말하자면 시인이 - 단연 1위로 나와있다. 책상머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글 쓴다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 중노동인가. 더군다나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을 갖는 대부분의 작가는, 퇴근 후에 다시 책상에 앉아야 하기 때문에 이름 그대로 극한 직업이다. 그래도, 영감을 받아 글을 쓸 수 있다면 몇 시간이고 내리 앉을 수 있지만, 대부분 머리를 짜내느라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글 쓰는 일이 좋아 오늘도 자리에 앉는 사람, 바로 그 ‘작가’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글 몇 개 잘 쓴 사람이 아니고,  즐거이 계속 쓰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물론 작품의 질은 기본이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예술을 일상에서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들이 진짜 음악인이고 예술인이다. 유명세를 타고 싶다거나, 돈을 만져보고 싶다는 것은, 복권을 사고 상금을 바라는 것만큼 허황된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재미가 있어야  우리 삶이 달려 나갈 것 같아 비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몇 년 전, "신문에 글 나가던데 돈 받으세요?" 하는 속물적이지만 현실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름대로 정곡을 찌르려 했던 것 같다. 다른 예로, 내가 속한 문협에서, "돈 안 주니 다시는 신문에 글 안 내겠다"라고 하며 협회를 탈퇴한 상반된 속물 예화를 만났었다. 다 맞는 이야기면서, 둘 다 틀렸다. 돈 줄 곳을 찾는다면 조만간 글을 쓸 이유를 다 잃어버릴 때가 올 것이다. 돈 때문에 글 쓰고 음악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의 대가는 기념품 하나 정도 받는 것처럼 할 수 있다.

기사에 나온 방송국의 갑질을 꼬집을 수는 있지만, 돌려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일에 대한 기회에 대한 장을 마련해 준 고마움을 잃지는 말아야겠다.

방송사 오디션 8강 진출했지만... 3만 원 받았습니다


참고 기사: 방송사 오디션 8강 진출했지만... 3만 원 받았습니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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