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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Feb 18. 2022

회개의 심각성에 하루를 맞추다

회개는 헤프지 않고 이전으로 되돌리지 않으려는 결단이다

메거진 “나는 매일 죽노라”는 삶을 꾸려나가는데 성경의 지혜를 구하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이와 함께한 묵상 기록의 흔적입니다. 한 발 한 발을 뗄 때 흔하게 접하는 방종의 소용돌이를 피하고, 바위 틈새에서도 발견되는 신실한 지혜와의 만남을 사진처럼 남기고 싶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사건 사고가 1세기 이스라엘 에서도 많이 있었다. 규모가 다르고 빈번함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건축, 건설 등의 당시 산업 재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재난도 있다. 인권이란 말이 통용되지 못하던 시대 상황에, 왕과 독재자들의 횡포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고, 신께 드린다고 하면 모든 잔인함이 통용되던 시대다. 그러한 때에, 어느 종교 집회에 대한 불시 공격으로. 여러 사람을 죽었다. 그리고,  피를 제사 재물에 섞어  거행한 정치인 빌라도의 이야기가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두어 사람이 예수께 와서  사건에 대해 알린다.  의도는 상상할  있는 범위다. 말의 올무에 갇히게 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지만, 갑갑증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듣고 싶어했던 것 같다. 예수의 대답은 이번에도 초점이 다른 방향이다. 인권이니, 분노니, 정치니 종교를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회개"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운다. 죽은 사람이  사람보다  많은 죄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니, 살아 있는 사람은  때를 자신들의 죄에 대한 회개의 기회로 사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심각한 사건 앞에 의외의 "회개" 카드를 꺼내  이유는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회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평안이 없어  안절부절  하는 , 죽음에 대한 불안과 초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일과 관계  수많은 부정적 요소 앞에 우리가 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 때문이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  동요를 잠재우는 유일한 알약이다.


회개하면 천국이 가깝고, 요동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정답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거부하려 한다. 조리된 속성의 육체에 갇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안을 원하느냐

그럼 회개하라

낮아지기를 원하느냐

그럼 회개하라

사랑하기를 원하느냐

그럼 회개하라

부유해지기 원하느냐

그럼 회개하라

이 거친 하루가 평탄하기 원하느냐

그럼 지금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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