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밥과 떡은 늘 같은 목적에서 쓰인다.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서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주식의 대명사로서 이 용어들은 표현의 방법만 다르지, 육체적 배고픔의 해소뿐 아니라 욕구의 만족 같은 정신적 측면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미가 같다고 그 세세한 부분까지 같다고 할 수는 없는데, 차이점을 해부해 글로 나열하는 일이 바로 작가의 능력이고 가능성이다.
글짓기 대회를 상상해 본다. 제목이 제출되면 그 내용을 받아 든 사람은 온갖 지식과 경험, 상상을 동원해 기승전결의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 지식만 가지고 나열되어서도 안되지만, 일방적인 생각이나 추상적 내용으로만 도배된 글은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빠져드는 데는 개인의 경험이 녹아 있을 때다. 약함과 추함을 고백하고, 재미와 웃을 수 있는 소재를 재공 하는 것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수필이 된다.
이어령의 빵과 밥은 많은 부분 이에 대해 해답을 주고 있다. 분석과 연구 자료가 지적 부문에서 펼쳐지는가 싶다가도, 개인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는 논지를 흐리지 않고 글의 흥미를 더해준다.
성서에 보면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유명한 잠언이 나온다. 여기서 무슨 종교적 진리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너무나 유명한 교훈인 데에 비하여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기에는 참으로 까다롭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신통하게도 선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번역한 옛날 성서를 펼쳐 보면 '빵'이‘떡’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서양의 빵은 한국의 떡과 비슷하게 생겼다. 형태만으로 볼 때 빵을 떡이라고 의역한 것은 지당하고 지당할 일이다.
그러나 그 뜻을 살펴보면 엉뚱하기 짝이 없는 오역이다. 한국인은 떡만 먹고는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떡은 간식이 될지언정 주식이 못 된다. 그래서 허구한 날 떡만 먹고는 살 수 없는 것이 한국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떡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일이다’라는 성서의 명구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으면 별 싱거운 말도 다 있다고 코웃음을 칠 일이다.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떡만 먹고사나, 밥을 먹어야지.' 그러니까 빵을 떡으로 번역해 놓으면 그 뜻은 마치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진다는 말처럼 싱겁게 되어 버린다.
왜 이러한 의역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빵의 문화권과 밥의 문화권이 서로 대립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즉, 서양인의 주식은 빵이다. 한국인의 주식은 밥이다. 빵과 밥의 차이 때문에 문화의 차이도 그만큼 달라진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그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부빛이 하얀 서양 사람들을 상대로 한 말이다. 그렇다고 빵을 밥이라고 의역해 놓고 만족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주식이기는 하나 빵과 밥의 개념은 엄청나게 다르다.
프랑스 빵은 참 맛이 있다. 무엇보다 그 바케트 말이다. (바케트는 불어로 긴 막대기라는 뜻). 정말 빵도 팔뚝만 한 긴 몽둥이처럼 생겼다. 늦잠 잘 자기로 이름난 파리 사람들이지만 이 빵을 파는 빵가게에 가 보면 아침에도 사람이 득실거린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바케트를 사 든 신사 숙녀들이 마치 깃대를 들듯 어깨에 메고 지나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 아니 그냥 들고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숫제 길거리에서 빵을 떼먹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 밥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거지가 아닌 다음에 길거리에서 밥을 먹거나 깡통에 밥을 담아 들고 다니는 사람이란 상상할 수가 없다. 더구나 밥을 가게에서 미리 지어서 사람들에게 판다고 생각해 보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근대화된다 하더라도 서양의 빵가게처럼 밥 가게가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같은 주식이지만 빵과 밥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밥만은 자기 집에서 짓는다. 이것이 동양의, 특히 한국의 가족주의를 쉽게 무너뜨리지 않는 요인이 된 것이다. 한솔의 밥을 먹는다는 정겨운 말이 있듯이 식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그 밥맛은 남에게 매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될 수가 없다. 밥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식구 수만큼 손수 지어먹는 것이며 또 한목에 만들었다가 두고두고 먹는 것이 아니라 끼니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에 밥은 곧 한 가족의 단위와 그 정을 측정하는 구실을 한다. 빵은 식은 것도 먹을 수 있지만 밥만은 온기를 지니도록 해야 한다. 식은 밥은 곧 식은 정을 의미한다. 생각나지 않는가, 그 춥고 추운 겨울 그리고 그 깊은 밤 집안 식구 하나가 늦게 돌아오면 그때까지 아랫목 요 밑에 밥사발이 묻혀 있다. 사람이 집 안에 없어도 밥은 그 방 안에 있다. 한솥의 밥을 먹는다는 것, 뜨거운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도 매일같이 되풀이해서 먹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 아내와 남편을, 그리고 형과 아우를 묶어 두는 핏줄의 확인이다.
만약에 서양 사람들처럼 밥 대신 빵을 주식으로 했다면, 그래서 빵가게에서 구워 낼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파리에서 손수 자취를 했었다. 전기밥솥을 사다가 혼자 밥을 지어서는 혼자 먹는다. 그때마다 눈에는 눈물이 서렸었다. 식구 생각이 난다. 절대로 감상이 아니다. 밥을 풀 때 그리고 밥그릇에 옮길 때 내가 홀로라는 것을 실감한다.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나 빵을 먹고 자란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경우가 바뀌어 한국에 와 빵가게에서 빵을 사다 먹었다면 아마도 내 눈에 눈물이 괴지는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기에 밥을 먹고 자란 한국인들은 아무리 근대화가 돼도 가족을 떠나 살기가 그만큼 힘이 드는 법이다. 끈적끈적한 그 밥풀만큼이나 빵과는 달리 밥은 서로의 체온을 묻어 다니게끔 한다.
이런 정감론을 떠나서 애기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빵은 고체이기 때문에, 또 그때그때 지어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반하기가 편하고 집 바깥에서 먹기에도 편하다. 한마디로 말해 집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편하도록 되어있는 주식이다. 동양 사람들이 (밥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패했다면 그 원인 중의 하나는 밥이 빵만큼 기동력이 없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밥을 지어먹어 가며 전쟁을 할 생각을 해보라. 행군은 멎어야하고 밥을 짓는 연기는 적의 표적이 된다. 특히 한국의 음식은 밥맛이 아니라 반찬까지도 젖은 음식이 많기 때문에 그 자체가 비전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레디메이드 음식이란 한국에 있어 거의 불가능하다. 기껏 길을 떠나면서 호주머니에라도 넣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떡 정도라고나 할까.
이에 비해서 서양의 음식물엔 빵처럼 국물이 없는 마른 음식들이 많다. 전투하기에 편하며 뛰어다니면서도 먹을 수가 있다. 음식 하나만 봐도 서양 친구들의 호전성을 넉넉히 엿볼 수 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식민지를 개척했던 그들, 우리 같았다면 밥을 지어먹고 김치 깍두기를 담아 먹느라고 그야말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났었으리라.
빵의 문화는 개인주의 문화이며 정복의 문화이며 활동의 문화이며 상업의 문화이다. 빵이 있는 곳에 전쟁이 있었고 개척이 있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분리와 집을 떠나서, 고향을 떠나서 행동할 수 있는 사회성이 있었다.
밥의 문화는 한솥의 문화이다. 지붕 안에 고정되어 있고 정적이며 집을 떠나서는 살기 어려운 귀향자의 문화이다. 떠돌아다닐 수 없는 문화이다. 그것은 평화의 문화이다. 정말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은 밥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밥에는 단순히 배만을 채우는 그 물질만이 아니라 그 김처럼 정이 서려 있고 사랑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도 또한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과장이 아니다. 같은 밥이라도 계모가 퍼 준 밥과 친어머니가 퍼 준 밥은 숟가락으로 떠보기만 해도 안다. 빵에는 그런 융통성이 없다. 어디까지나 한 덩어리의 빵은 한 덩어리의 빵일 뿐이다. 그러나 밥 한 사발은 결코 같은 밥 한 사발이 아닌 것이다. 온기가 다르고 양이 다르고 퍼 담은 솜씨가 다르다. 방의 문화권과 밥의 문화권, 나는 배가 고파도 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