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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Oct 20. 2022

곰 내려온다 곰이 내려온다

뒷뜰에 나타난 곰에 관한 에피소드

1. 요 며칠 사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곰의 발자취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2층 Deck에 나가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나무 그룹 들 사이로 이상 징후는 없는가, 뒷 뜰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 넘어져 있다거나 발톱 흔적이 남아 있는지 괜한 의심의 눈으로 내려다본다.


울창하고 키 큰 나무 숲 사이로 여러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라지만, 땅들이 넓을 뿐 모두 가정집으로만 이루어진 지역일 따름이다.


산은 멀다. 북쪽 산악지역인 코퀴틀람은 30Km 이상 떨어져 있다. 게다가 중간에 강이 있다. 동쪽의  칠리왁 역시 거리가 55Km 나 된다. 우리 동네는 Salmon River라는 이름의 강이 숲을 끼고 흘러도 크기는 도랑 정도라, 산이라고 할 것도 없는 평야 지역에 불과하다. 가끔 사슴이 다니고, 너구리 가족이 방무하며, 멀리서 코요테 울음이 들리는 정도다.


곰은 이곳에서는 전혀 생소하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바로 경험과 증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난 3년간 어떤 무서운 동물이 나타난 젓이 없다. 이와 함쎄 동네 지역 주민도 하나 같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가.


그렇다면, 문제의 곰은 어디서 온 것일까?


2


그렇다. 지난주 곰이 왔다 갔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차고 앞을 가보니 가지런히 놓여있던 음식물 재활용 통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라쿤의 일일 수 없었고, 사슴이 할 행동은 아니다.


좀 더 궁금증을 풀기위해, 건물 외곽에 설치해 놓은 보안카메라의 녹화 장면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15일간의 생생한 장면들을 녹화하는 기능이 있다. 편리하지만 그래도 지난 며칠 간의 행적을 뒤져 본다는 것은 수고가 따른가. 집에 "별일"이 생기지 않는 한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지금은 해야했다.


가끔 심심할 때 되돌려 보는 일을 연습 삼아 했다보니 좀은 익숙하다. 사실 이 8대 카메라의 목적은 아래층 Airbnb 여행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했다.



3

곰은 이른 아침에 들렸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나무 숲에서 나오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뒷 정원을 거쳐 차고가 있는 앞쪽으로 이동한다. 잠시 후 음식 쓰레기 통을 뒤엎는데 카메라 흔적은 여기 까지다.


곰은 생생하게 우리 집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에 남긴 이 흔적들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을, 다음 날 알게 되었는데, 서쪽 정원에서 곰의 분뇨가 발견되었다. 개의 그것보다 4-5배 크기에 놀랐다. 이와 함께 두 가지 걱정이 먼저 앞섰다. 이것을 어떻게 치워야 되냐는 문제와, 곰이 똥을 눴다는 것은 자기 만의 영역 표시가 아닐까 하는 우려다. 이곳은 내 땅이다 식의 침략자 근성.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 카메라에 잡힌 영상을 다운로드해 편집했다. 캐나다에 살면 살수록 무기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단조롭고 평이한 사회를 지향하는 문화이고, 느리기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다.


일상에 "큰 일"이라는 것이 드물어 아주 작은 사건 하나에도 호들갑을 떤다. 뉴스에 대서특필 되는 일에 대해 조소한 적이 있다. 마약 관련 일이라던가 마을에 총소리가 나는 일이 띄엄띄엄 있는데, 기자들에겐 재미 거리를 제공한다.


나 역시 평이한 일로 일상을 채우다 보니 곰에 관한 뉴스는 흥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다. 긴 영상의 알맹이만 뽑아내 비디오를 편집하고 짧은 자막을 넣어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나 혼자 보자는 기록물에 불과하지만, 또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동영상 하나도 개인적으로 재산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곰이 찢어 놓은 럭비공

음식을 찾아 먼 산에서 강을 거슬러 이곳까지 왔을까. 지나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을 것이지만, 그날 이후로 며칠에 한번 새로운 증거를 남기며 찾아왔지만, 곧 다른 지역으로 갔을 것으로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심하고 어둑한 밤에도 차고 앞에 있는 음식물 재활용 쓰레기에 음식을 버리러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신은 깨진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4

그 일 있은 날로부터 이틀 후, 저녁 무렵에 밴쿠버 다운타운에 나가 있었다. 옆집에 사는 Sandra로부터 다급한 메시지를 받았다. 그날 아침에 곰을 보았다고, 이웃인 우리에게 주의를 주기 위한 배려로 전화연락을 줬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란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 새끼 곰과 함께 있는 엄마 곰일 확률이 높다.  이건 좋은 소식은 아니다. 새끼 곰을 지키기 위해 엄마 곰은 공격적이 되기 때문이다.  



S: Hey Ryan! Cassandra from next door. We had a bear on the property this morning. Just letting you know it was in the bushes between our houses just now.


K: Oh my God, Thank you so much for letting us know. He's probably roaming around since our security camera caught him 3 days ago in the early morning too. I thought he had left


S: It appears it's still here, and I saw a small one and a bigger one. Stay safe.


K: ok, Keep me posted.




그렇다면, 일이 더 심각해진다. 녀석은 이곳에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벌써 며칠 째 여기저기 새벽마다 다니고 있으니,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문득 생각났다. 범이 내려오는 장면을 형상화한 노래가 대 히트를 쳤지만, 나는 "곰 내려온다"가 머리를 치고 있는 격이다.


"곰 내려온다, 곰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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