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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Aug 25. 2023

지혜의 파편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누구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지고 최선으로 선용하지는 않는다. 특히 환경과 신분이 달라지면 정신적인 좌절도 급격히 진행되어,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예외는 항상 있었다.


복음에 대한 진심, 즉 바울의 심정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죄수로 붙들려 온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론이다. 특별히 받아들여진 재판장에서의 '말할 기회'는 그가 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잘났어도 내세우지 않을 필요가 있는 반면에, 잘난 것을 굳이 내세워야 할 때가 있다. 그 활용의 가치를 판단하며 상황을 뚫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경험과 지식, 그리고 그 올바른 활용법의 총체적 메커니즘인 지혜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죄수로 끌려온 상황에서는 낙담과 함께 자포자기가 더 자연스럽다. 간방의 차가움으로 정신까지 무너지게 한다. 폭력과 고문은 꿈을 접게 하며, 의지가 아무 소용없고 삶을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은 것을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에서 만나게 된다. 시대가 어려울 때 성공한 정치 지도자들은 하루아침에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감옥과 고문을 겪고도 참아낸 인내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한국 근 현대사의 정치인 중 군정의 압박 속에서 이겨낸 인물들이 꽤 많다.


선교를 위해 북한데 억류되었던 선교사들의 스토리는 늘 감동적이다. 고문보다 무서운 좌절이 몰아칠 때면 비전을 새롭게 함으로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바로 목표와 비전을 새롭게 하여 푯대를 향하는 선택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중요한 절차다. 바울에겐 왜 이런 절차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외형상 그 비전을 잃어버린 적이 없어 보인다. 늘 복음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유지했다. 그런 이유가 그를 이 엄중한 정치지도자 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만든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법정에서의 인간행동의 표준 모델은, 자신의 위치와 업적을 내세우거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되지만, 바울은 이런 것에 상관하지 않는가. 그의 고민은 복음을 어떻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전할까 하는 데 있었으니 관연 초인적인 일관성이다. 그 뚜렷한 특징을 찾아본다.


우선, 자신의 태생이 정통한 계통인 것과 교육 및 유대교에 대한 열정이 남보다 뛰어난 이성적이고 학식 있는 사람인 것을 들러냄으로써, 이제 펼칠 변론에 대한 청중의 관심을 유도한다. 어디서 굴러온 돌이 아니라, 자기를 고소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부류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자신에게 일어난 특별한 경험을 소개함으로 복음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의 표현에는 무리가 없고, 과장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죽었다거나 두려움으로 위축된 면도 없다. 담백하고 깨끗하다.


아마 그의 눈을 보며 경청하던 사람이라면 쉽게 빠져들지 않았을까?



지혜에 대해서


학식과 지혜는 비례한다는 정의는 일방적이고 옳지 않다. 그러나, 옳다.


지혜를 쉽게 설명해 본다면, 숙련된 건축자의 지식을 잘 활용하는 노하우로 대변될 수 있겠다. 많은 재료를 펼쳐 놓고도 짜깁기하지 못하는 미숙함이 있는 반면에, 소수의 재료로도 적절한 부분에 잘 사용하여 멋진 결과물을 내보일 수 있는 능력이 지혜다.


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경험이 많은 사람 손에 들린 도구들은 마법을 발휘한다. 오늘날 유튜브에서도 쉽게 대할 수 있는 장면이다.


장인들의 작품완성까지의 과정을 시청하면서 경이롭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이런 객관적 목격이 주는 부가가치가 있다.


경험과 지식이 없어도 동영상을 보는 것 만으로 자신도 능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과 안도를 갖게 한다. 여기서 안도란, 자신의 무능력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일시적으로 탈피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르다. 착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다는 진리를 확인해 준다. 조각난 지식과 도구 전체를 하나로 맞추어 완성시키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조각조각은 어찌어찌 가능하지만, 완성시키기에 턱없이 모자란 자신만 확인하고 쑥스러워한 적이 많다.


“Wisdom is not a product of schooling but of the lifelong attempt to acquire it.”
― Albert Einstein

지혜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 인생을 통해 노력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 아인쉬타인


바울의 지혜는 죄수로 잡혀온 자신을 한탄하는 종류에 머무르지 않고 목적의식을 분명히 함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열정과 인내와 결합하여 이루어낸 성취, 죄수라는 신분 좌절의 시기에 로마인임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결과, 아래로부터의 복음 전파가 아니라, 위에서부터의 전파를 궁극적으로 달성해 낼 수 있었다.


적용과 기도:
지혜는 하늘로부터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는 원초적으로 뛰어난 지혜의 능력이 동시에 있다. 단지, 깨닫고 잘 선용해야 는 책무가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솔로몬이 그 어떤 귀하고 좋은 것보다 지혜를 구하여 결국 전무후무한 지혜자가 되었듯이, 지혜는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해 노력하고 적용하여 새롭게 생성해 가야 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하늘에 그 근원의 뿌리를 두고 있는 능력이다. 일상에서 지혜를 찾고 그 파생된 흔적을 보거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1)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2)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 사도행전 26장



메거진 “나는 매일 죽노라”는 삶을 꾸려나가는데 성경의 지혜를 구하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이와 함께한 묵상 기록의 흔적입니다. 한 발 한 발을 뗄 때 흔하게 접하는 방종의 소용돌이를 피하고, 바위 틈새에서도 발견되는 신실한 지혜와의 만남을 사진처럼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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