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 교회의 성숙을 위한 바울의 기도
기도
기도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에 먼저 접근하고, 아침에 눈뜨면 바쁜 일정으로 달려가는 습성은 의지로 절제하고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
설상 자리를 잡고 QT를 한다고 해도, 산재한 "Things to do"로 도무지 집중이 안 되곤 한다.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한 사물이 즐비할 때, 손만 뻗으면 이 "할 일"이 시작되는 그곳은 경건의 시간을 갖기에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켜고 싶고, 음악을 듣고 싶고, 문 밖에 바로 TV를 켤 수 있는 환경, 묵상에 집중하기란 유혹이 많다. 그래서, 진정 독서나 글쓰기가 목적이라면 도서관으로 가고, 기도의 목적이라면 아예 구별된 교회로 달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예배당은 오직 기도와 예배를 위한 공간이다. 잡다한 일의 가지를 쳐낼 수 있는 최고의 기도 장소다. 누구는 집 방 한 칸의 골방기도를 추천한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으로 옮기도 않아도 되어 편리하고, 시간 절약도 된다. 어떤 이에게는 어울리는 공간인 것이 분명 맞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집은 너무 편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편하다는 사실은 더 편한 것을 찾게 되어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 진다.
그래서 하루의 시작을 QT와 기도로 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곳이 있다. 다소 이동의 수고를 곁들여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이동의 순간조차 말씀을 오디오로 듣는데 활용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는 지난 1년간 기상 시간이다.. 늦게 잠이 들어도 그 시간엔 눈을 뜬다. 어느 날은 알람이 나를 깨우고, 다른 날엔 내가 알람을 깨운다. 그러나, 이젠 알람의 유무와 상관없이 몸이 알아보고 그 시간에 일어나 알람 예약을 꺼버린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지경이다.
"야, 좀 일어나라. 너는 짜샤 알람이 되어서는 이렇게 늦게까지 자냐...?"
농담까지 하며 시계와 씨름하는 여유도 갖는다.
그 새벽에 교회로 달려가게 되면서 점차 기도의 영역이 넓어짐을 깨닫는다. 나 자신과 가족 만을 위한 "주세요" 기도에서, 소속된 부서와 구역을 위해 기도하고, 사업과 동역자를 위해 기도한다..
새벽기도 프로젝트를 한 지 6개월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접하게 되었다. 기도의 대상도 아니던 이름이 기도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다. 15년 이상 같은 교회에 있으면서도 영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던 꺼끌한 형제를 위해 기도하게 된 것이다.
남을 위한 기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도의 습관을 통한 스스로의 변화는 증명된 것과 같다. 기도란, 그 대상인 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맞다. 남을 위해 기도할 때, 기도 내용의 응답보다 나의 성숙이 가장 뚜렷한 응답이다. 부족하던 관심이 늘어나고, 생각의 관점이 바뀌고, 관심의 지경이 넓어진다. 결국, 나의 문제로 헤매던 시행착오는 작아지면서, 생각과 행동이 커지는 변화를 접할 수 있게 된다.
성경으로
초대 교회들 중 많은 곳은 바울의 선교여행을 통해 시작되었다. 초대 7대 교회는 로마 제국 영토인 소아시아, 즉 지명으로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일곱 대도시에 세워진 교회들이다. 이미 기존에 있었던 교회들로서 예루살렘, 안디옥, 로마 교회 등은 바울의 역할이 크게 없었지만, 고린도, 데살로니가, 갈라디아, 에베소, 라오디게아, 마케도니아 교회 등은 바울의 전도여행으로 세워진 교회들이다. 이와 달리 골로새 교회는 특이하다. 바울의 세 번 전도여행 중에도 다녀가지 못한 곳인데, 에바브라라는, 바울을 통해 회심했던 제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골로새에 보낸 바울의 편지 내용의 첫머리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내용은, 그들에 대해 기쁨과 감사, 그리고 사랑의 내용들이다. 다른 여러 교회에 쓴 권면, 혹은 책망 등의 내용과는 다르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늘 기도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 본문은 아래와 같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 1:9-12
이 기도 내용을 요약하면 일곱 가지다.
1.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것
2.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3. 선한 일에 열매 맺기
4.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일
5. 능력이 많아짐
6. 기쁨과 견딤과 오래 참음
7.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도록
과연,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면, 그 기도의 대상이 이런 성숙에 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합당하게 행하며,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기를 힘쓰고, 달란트를 활용한 열매를 맺고, 늘 기뻐하면서 어려움을 참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는데 까지 자라나도록 기도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남을 향한 이 기도는, 여러 가지로 중언부언하지 않고 핵심을 기도하게 하는 절재 되고 요약된 언어들이다. 기도하는 자신이 이미 이와 같은 일곱 가지 해답을 얻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오래도록 곁에 있었음에도 교제가 없이 서먹하던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나 자신은 이미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기특함을 느껴 보고 싶지 않은가? 그러면 이 일곱 가지 앞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넣어 1분만 기도하며 된다. 그 사림은 밉거나 오래도록 잊혀 있었던 사람이면 더 좋다. 그 결과의 첫 번째 변화는 사랑이 넓어져가는 내 속사람을 보게 되는 일이다. 당연히 그 형제에게도 동일한 반응과 성숙이 있을 것이고, 그 기도의 물결은 나에게서의 확장을 넘어, 기도하는 형제에게서도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기하급수"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은 사랑의 꼬리를 물게 되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