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여기 태어날 때 부터 걷지 못하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세계에서 걷는 다는 것은, 혹은 뛰는 다는 것은 단지 상상만 할 수 있는, 자신과는 관계 없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걷지 못하는 그는, 매일 구걸을 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구걸하기 위해 앉아있는 그에게 적선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앉은뱅이요 구걸하는 자로 정의 내립니다.
앉은뱅이의 지인, 혹은 가족에게 어쩌면 그는 자신이 돌봐야 할 부담거리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매일 수고하는 가족들에게 구걸하여 얻은 돈을 조금은 나누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매일 그 앉은뱅이를 사람이 많은 그 곳 까지 매어다 주어 구걸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이 볼때, 그는 앉은뱅이이며, 구걸하여 삶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사람이기에, 그에게 필요한 도움은 구걸을 할 수 있는 장소 까지 이동을 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앉은뱅이는 항상 있던 그 자리에서 구걸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 갑니다. 그들의 빠른 발걸음만 보입니다. 가끔 돈 몇 푼 던져주는 이의 발등도 보입니다.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의 발이 그의 앞에 멈춰 섭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를 보시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봅니다. 왜 자신들을 보라고 했을까. 뭔가 푼돈이 아닌 더 큰 금액을 주려 하는 것은 아닌가 기대해 봅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은과 금이 아닙니다. 실망감이 몰려오며, 분이 나기도 합니다. 자신을 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했던 사람이 그의 오른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웁니다.
발에, 발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의 발이 움직입니다. 몸을 지탱하여 서게 합니다.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합니다.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가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태어날 때 부터 걷지 못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리고 그의 주변 가족과 지인에게 있어서, 그의 정체성은 앉은뱅이 였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금전이었으며, 구걸 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을, 그의 필요를 완전히 다르게 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오순절 성령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님과 동행을 시작한 그 두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리 하셨듯이,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조차 모르던 정체성과 필요를 깨닫게 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쫓아 구원을 선포 합니다.
돈을 구했지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앉은뱅이, 구걸하던 자"에서 "나음 받은 자"로 변화하게 됩니다.
걷고 뛰는 새로운 차원의 삶에 들어간 그는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사도행전 3장 [개역개정]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0개월 가까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선택하여 다 정리하고 귀국 한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랬다고 하지만, 병원에 잔류하고자 불법 - 혹은 편법을 저지르면, 남아 있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상황이 10개월째 접어들자, 그동안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불안이 고개를 들고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10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분명히 내게 일어나길 원하시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나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길 원하시며, 잘못된 삶의 목표 (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이라고 썻지만, 결국은 내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찾고, 인정 받고 사랑 받고자 하는 노력)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갚아가며 살아가는 내가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내가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영광 위한 도구로 창조된 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 받는 자로서 창조된 나 임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는 도구로서 성숙해 지는 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 가운데 거함으로, 그 관계 가운데서 온전함으로 변화 되어 가고 있는 나를 알게 하길 원하십니다.
나 자신의, 사람들의, 하나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동행하며 순간 순간을 살아갈 때, 그분의 역사하심을 보게 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그분의 제자로서의 삶을 흉내내는 내가 아니라, 진짜 그분의 자녀되며 제자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꾸만 금과 은을 찾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삶이 어떻한 삶인지 제대로 채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모습일지, 보아서 들어서 알기에 흉내를 내려고 발버둥 쳐 보기는 했습니다.
그런 삶이 불안하고 힘들어 자꾸 다시 금과 은을 찾습니다.
제가 찾는 금과 은은, 물질, 가족, 사람들의 인정, 직업, 공감, 그럴듯한 비전 등등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금과 은보다 더 좋은, 아니, 그런 것들과 비교 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선물을 주시길 원하신다고
사랑 받도록 창조된 자로서 그분과 동행하며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허락해 주시길 원하신다고.
금과 은이 아닌 다른 것을 자꾸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 조차 못하던 나에게,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주겠다 말씀하시고는, 제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겠다는 그 말씀을 이해 조차 못하고 불안하 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나에게,
그분은 그분의 품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구원의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한국에 들어오기로 마음 먹었을 때 주셨던 말씀.
시편 131:1-3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이 말씀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길 다짐하며 귀국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의 그 다짐을 받으시고, 하루하루 내 삶가운데 가장 깊은 곳까지 찾아오셔서 나와 동행 하시며 그분의 섭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말씀을 삶으로 체험하며 누릴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새로운 차원의 삶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한가지, 내가 구하는 한가지는, 평생토록 주와 함께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4)"
왜냐하면 그분과 동행하는 삶은 세상 그 어떤 삶보다 기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장막에 거하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날 보다 기쁘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84: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