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서"있는, "앉은뱅이"였던 자.
여기, 나음을 입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사십여 년 앉은뱅이로 구걸을 하며 살았다는 것은, 성전 미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던 사실 일 것입니다.
그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던 두 사도가 제사장들에 의해 잡혀가 갇혔습니다.
둘째 날 아침, 제사장들은 두 사도를 불러내러 심문합니다.
두 사도를 "학식 없는 범인"으로 착각했으나, 그들이 담대히 이야기 함을 보고,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임을 알고 놀랍니다.
그리고.
앉은뱅이였던 그 사람도 그 두 사도 곁에 서 있습니다.
앉은뱅이였었지만, 나음을 입어 "서"있는 것이 그 기적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증인입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믿습니다.
나음을 입은 그 사람은 아마도, 빨리 집에 달려가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함께 축하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동안 자신이 미문에 앉아 구걸할 수 있도록 매일 자신을 데려다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하러 다니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이 잡혀간 그날 밤을 지내고 (아마도 밤새 성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튿날 다시 사도들의 곁에 서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음을 입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대 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만 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명 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가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크게 쓰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려고 준비 중이시군요" "하나님의 큰 일을 하시게 될 거예요"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큰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오늘 나의 삶은 미래에 하나님의 큰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인가?
"큰 일"을 성경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신명기 11:7 너희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너희의 눈으로 보았느니라
사사기 2: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사무엘상 12: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사무엘상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사무엘하 7:23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 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욥기 37: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시편 126: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마가복음 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누가복음 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큰 일"과 관련된 말씀은 대부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그 큰 일을 보고, 기억하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한 일과 "큰"이라는 형용사가 연결된 것은 대부분, "큰 죄" "큰 잘못"들이었습니다.
우리 기준에서의 "큰 일"이 어떤 것인지,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행하시기 원하시는 "큰 일"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우선은 "큰 일"을 행하는 주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근 1년간 제가 가장 많이 묵상하던 시편 말씀으로 돌아가 봅니다.
시편 131:1-3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은, 말합니다.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겠다고.
그는 그저, 젖 뗀 아이처럼 하나님 품에서 고요하고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영원히 여호와를 바라기를 원합니다.
왜 자꾸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일을 하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기 위해, 나의 삶이 하나님의 큰 일을 하는 삶이 되길 원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 그리고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에 교회에서 "기드온의 300 용사"가 되자며, 기도를 열심히 하고 무엇 무엇을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한 "기드온의 300 용사", 그 용사 중 한 명이 되길 원한다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은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려고 데리고 나온 병사들 중 삼만 명 이상을 돌려보내시고, 300명만 남기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리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싸움에 뛰어난 정예부대 300명이 필요하셔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자신들의 능력이라고 할 까 봐 그렇게 300명으로 줄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돌아간 3만여 명의 병사 중 한 명이 아닌, 남겨진 300명의 군사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요...
예전에 성경공부 모임에서 사도행전 3장을 묵상하고 나눔을 하다가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소유를 팔아 나눠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필요에 의해 그 나눔을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보지 않았을까.
사도행전 3장 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다시 한번, 나음을 입은 앉은뱅이였던 그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그냥 거기에 서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드러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이 분명합니다.
그를 통해 드러나길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신 "큰 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잡아 일으킨 자신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 자녀들을 보란 듯이 잘 키워 내는 것. 아픈 몸이 기적적으로 치유받는 것. 교회 교인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 교회 건물을 잘 지은 것, 교회 파송 선교사 숫자가 많아지는 것.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잘 되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 "큰 일"이라고 착각하고 살던 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요셉 주변 사람들이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 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잘 됨"의 복도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어쩌면 이 방법은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혹은 기쁘게 쓰시는 방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만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시각을 가진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 가운데하신 "큰 일"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던 나에게, 그렇게 "큰 일"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갚아보겠다는 나에게.
그 은혜는 인간이 갚을 수도 없는 것이며,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은혜임을.
매일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로 조금씩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신 "큰 일"을 기억하며 기대하며 전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은, 미래의 큰 일을 위해 준비되는 과정의 일부가 아닙니다.
50여년의 결혼 기간이 결혼 기념일 50주년 행사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던 하루하루의 삶이 모이다 보니, 50여년이라는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하루하루의 삶을 축하하고 기념하기위한 축제를 하는 것일겁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앞에서 구원받은 자녀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이 드러나며 그분만 영광받으시길 원합니다.
마커스 워쉽 앨범을 듣다 보니 김남국 목사님께서 축도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특별한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크고 위대한 일을 드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 자체가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고 위대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하루를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작고 소소한 일을 묶어서 큰 일을 만드십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해 갈 겁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하루의 삶에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자리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은 큰일이 드러나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뺏는 삶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하나님 대신 큰 일을 하려고 발버둥 치는 삶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그냥, 오늘 하루 나의 삶의 작은 순간에도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누리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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