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여행 02.
오랜만에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었는데 더 추워지기 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틀에 걸쳐서 둘레길 5코스인 관악산 코스에 도전했는데, 결국 다 걷지 못했다.
자세한 여정은 다음에 다시 적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부끄러운 기억만 적어 내려가 보기로 한다.
관악산에 들어서서 걷다가 만난 무당골.
무당골 안내 표지판은 세워진지 얼마 많은 시간이 지난 거 같지는 않았는데 유난히 스크래치가 있는 단어가 있었다.
"무당"이라는 글자.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무당골 바위에 검은 페인트(?) 같은 흔적 위에 새겨진 십자가 무늬.
그 옛날 무속신앙의 흔적이 맘에 들지 않은 누군가의 소행이겠지.
누가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냥 왠지 추측할 수 있어서,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웠다.
난,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원자로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고, 그 덕분에 내가 구원받았음을 믿는다. 그분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내 삶 가운데 깊이 간섭하여 주시고, 그로 인해 내 삶이, 나의 하루하루가,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러나,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설령, 그게 정말 그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해도, 그가 그것이 좋다고 느끼지도 못하는데 강요하는 것이 옳을까?
우상을 부수라는 말이 성경에 물론 나오지만, 성경에 있는 수많은 명령 중에, 가장 중요하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었다.
"무당"이라는 글자를 훼손하고, 바위에 십자가를 그리는 행위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서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고, 내가 주장하고, 내가 믿는 게 옳기 때문에 그와 반대되는 건 모조리 없애 버린다는 생각에서 하게 된 것일까.
천주교와 기독교 역사 중에, 부끄러운 기억들이 참 많다.
물론, 모두 약점이 있는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도 없고, 그대로 순종하여 아름답고 좋은 결과들을 항상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부터.
오늘 함께 사는 나의 가족을 사랑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가족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보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생활 방식이나 신앙 스타일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무당골을 뒤로하고 더 걷다가 만난 쉼터 도서함.
운영 일시 중단이다.
도서를 가져가고 반납하지 않아 중단되었다.
뉴스에서 이미 들어본 이야기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이번엔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웠다.
물론 뭐, 한국인들만 그럴 것이다 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그렇게 훔쳐간 책으로 참도 배부르시겠네.
훔쳐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빌려간 후 얼마 만에 반납하라는 규정조차 없이 완전 자유를 주었으니 말이다.
빌려가서 최대 한 달 혹은 도서함 반경 몇 미터 안에서만 읽으라는 규정이 있었으면 반납률이 조금이라도 올랐을까?
자유가 만들어낸 방종. 아직 우리의 시민의식은 여기까지인 것일까?
그날 나는 그렇게 그 두 가지 부끄러움을 안고,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어제, 다시 관악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왔던 낙성대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석수역에서 반대로 출발해 보려고 했는데.
또다시 마주한 부끄러움.
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걸까.
차라리 길에 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주워 버리기라도 할 텐데, 어째서 저 멀리 숲 속에 던져 버리는 걸까.
마침, 석수역 옆에서 산 뻥튀기를 담아주신 봉투가 있어서 거기에 쓰레기를 주워 담기로 했다.
시작은 그냥 눈에 띄는 큰 쓰래기를 담을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쓰레기에 집중하며 산을 오르게 되었다.
덕분에 서울 둘레길이 아닌 관악산 둘레길로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다시 뒤돌아 내려왔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쓰레기 봉지가 꽉 찼다.
뭐, 물론, 산에서 버릴 수 있겠다 싶은 사탕 껍데기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왜 산에 버려졌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마요네즈 병이며 담배꽁초와 담뱃갑.
건강하기 위해 등산하고 호박즙에 블루베리즙까지 마시면서. 산은?? 산 건강은? 산은 누가 지켜줌?
저런 검은 봉지로는 택도 없으니, 다음번 산에 갈 때는 빈 쌀포대 하나 메고 가야 하나.
둘레길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부끄러움을 만났다.
다음번에는
자랑스러움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