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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Feb 24. 2017

기억

기쁨의 시작

기억한다는 것.

히브리어로는 "자카르"라고 하는데, 이는 평상시에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출애굽기 17:8-16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의 맨 처음 전쟁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본문을 꼼꼼히 읽다가 새롭게 깨달은 것 한 가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도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4절)"

외워 들리라고, 즉 기억하게 하라고 하신다. 

왜 기억하라고 하셨을까? 


모세&아론&여호수아&이스라엘 백성들.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 함께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모든 사람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특별한 경우인 모세는 예외로 하고)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가나안 땅 정탐 사건인데, 왜 많은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선포를 하였을까? (민수기 13, 14장)

분명히 그들은 모두 출애굽을 하며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도 보았고, 홍해를 가르시는 것도 보았으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셨으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시는 등등등의 수많은 기적들을 경험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 모두 경험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을 잃고 40년을 광야를 떠돌다가 광야에서 죽었고, 출애굽을 경험한 자로써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었을까?


내게 주신 깨달음은 바로 "기억"이다. 기억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게 하심으로서, 그분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놓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여호수아는 기억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잊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똥 멍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슈퍼 똥 멍청이는 나 자신이었다.

작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다음 과정을 준비하는 가운데, 내 개인적인 잘못이 아닌 제도의 허점으로 인하여 나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착각했던 계획이) 틀어졌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다. 

나는 나름 헌신한다며, 순종한다며 여기까지 온 것인데, 결과가 겨우 이것이냐며 원망했다.

병원에서 일하며 석사학위를 받기까지 3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너무 억울했다. 

그 시간들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청년부 예배 설교가 [눈물로 씨를, 기쁨으로 단을]이라는 설교였다.

시편 126:1-6이 본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목사님께서는 크리스천의 "견고한 기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 기쁨으로 인해 현재의 고통을 승리하며 이겨나가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는데, 그 "견고한 기쁨"의 출발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 내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억지로 가장하는 기쁨이 아닌, 우러나오는 기쁨.

그 기쁨을 구성하는 것 중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오는 기쁨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셨던 일들에 대한 기억이 주는 고백인데,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 자신의 굴곡 많았던 삶에 대하여 한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삶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한다.

이러한 과거로부터 오는 기쁨이 있어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생겨날 수 있다고 하신다. 미래에도 신실하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


정리해 보자면, 견고한 기쁨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상황에서도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에, 철저하게 깨닫고 회개했다.

진정한 슈퍼 울트라 똥 멍청이는 나구나.

이스라엘 민족들이 아니라 내가 멍청이구나.

30년 인생, 길지도 않은 내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역사하셨던 그분을 경험했고 찬양했으면서, 몽땅 다 잊고 있었구나. 멍청이다.


기억. 그리고 자카르.

평상시에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는 상태.

출애굽기 33: 11에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라고 나온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항상 회막에 있으면서 기억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사랑을.


"에벤에셀"이라는 헬라어가 있다. 

"도움의 돌"이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에, 사무엘이 그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불렀다. 

사무엘상 7장 12절에는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야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을 때 이렇게 곳곳에 기념비를 세우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념하고 기억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그래도 잊었는데 이런 기억의 기념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에벤에셀이라고 추정 되는 곳. 사진 출처(http://www.chtour.co.kr)


나에게는 에벤에셀이 있는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며, 나만의 에벤에셀에 기록해 놓고 기념하며 기억하는 것을 너무도 소홀하게 여긴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한다.

나는 회막 가운데 거하는가?

회막을 떠나지 않았던 여호수아처럼, 항상 그분 곁을 떠나지 않으며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을 기억하는지 반성한다.


큐티를 하며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깨달음으로 다이어리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 삶 가운데 영광 받으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일기를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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