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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r 02. 2020

사이드 스토리_02

02. 소년의 고등학교 시절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여전히 공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 학교는 지방에서는 나름대로 알아주는 학교였기 때문에 내신이 불리했지만, 그러한 입시제도는 소년에게 아무런 긴장을 주지 못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년은 입시제도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소년은 기숙사 생활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학교에서 흔히 불치의 병이라 불리우는 <닭병>에 일찍 걸렸기 때문에 중국어와 한문을 제외한 모든 수업에서 깨어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뭐, 중국어와 한문은 소년이 좋아했던 과목이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오답노트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라는 의문을 가질 때, 소년은 어차피 수업시간에 자느라고 필기도 못 하는데, 굳이 수업에 쓸 필기 노트를 구입해야 하는가 와 같은 의문을 갖고 있을 정도로 소년은 정말 막장으로 아무 생각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소년을 무턱대고 욕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사실 소년이 처음부터 수업시간에 잤던 것은 아니거든요. 중학교 때의 소년은 필기를 열심히 하기 위해 바른손 팬시에서 예쁜 색 볼펜, 노트, 지우개 등의 학용품을 구입하고, 노트필기도 주위에서 보았을 때 소녀 감성으로 열심히 했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닭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업시간에 일어나서 수업 듣기나 세수하고 오기 정도를 했다면, 소년은 좀 더 하드코어한 방법을 썼습니다. 소년은 어릴 적 봤던 청춘영화에서 주인공이 면도날을 이마 앞에 매달아 놓고 졸면 이마가 베이는 그런 노력법을 보고 나서,


그래, 무릇 공부는 저렇게 하는 거야!


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졸리면,


커터칼로 왼쪽 손목을 그어서 피를 보기


라던가,


의자에 압정을 깔고 앉아 보기


같은 것 정도는 해줘야 자지 않기 위한 노력을 좀 했다고 어디 가서 말할 수 있지 않나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러한 노력들이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중엔 칼로 그어도 압정을 깔고 앉아도 잠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라는 후련한 마음으로 그냥 잠을 자기로 했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덕분에 고등학교 내내 선생님 수업은 하나도 듣지 못 했답니다. 내신은 학년이 지날수록 떨어져,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전체 15등급 중에서 8등급을 찍었으니까요.


이러한 소년이 처절하게 반성하는 시기가 머지 않아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소년에게 수학이라는 과목은 대충 공부해도 결과물이 잘 나오는 언제나 나의 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만, 고등학교의 한 학기 수학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본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수학시험은, 음, 문제에 나오는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할 정도였으니까 대충 어느 정도로 망가졌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 않을까요.


참고로 그 시험을 본 당시 소년은 1번부터 20번까지 푼 문제가 거의 없이 모르면 넘기고 모르면 넘기고 하다가 20번까지 다 갔는데 시간은 이미 30분이 지나있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시험을 보면서 처음으로 식은 땀을 흘리고, 샤프를 쥔 손이 덜덜덜 떨리는 경험을 처음 해봤으니까요.


그렇게 고등학교의 한 학기를 날려먹고 난 후, 소년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결심하고 나서 역전극을 이룰 것 같은 소년이었습니다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답니다.


먼저 소년은 밤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후에, 기숙사의 방에 돌아와서 또 새벽 2~3시까지 수학참고서를 보고 또 봤습니다. 뭐, 그 당시의 유명한 수학참고서는 하나 밖에 없었을테니 이름은 생략하도록 하죠. 여기서 소년은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게 되는데, 시간이 너무 없었던 나머지 아이들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그 수학참고서를 전부 외워버리는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랍니다. 솔직히 그 수학참고서가 많이 불친절하긴 하잖아요.


아마 평생 처음이었을 거에요, 소년이 그렇게 피눈물나게 수학을 공부했던 게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도학력 고사까지 모두 그 학교의 수학평균점 미만을 기록했답니다. 그리고 죽을만큼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 역시 평생 처음으로 느끼게 된 거죠. 그렇지만, 다른 과목은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소년답다고나 할까요. 대체 대입시험을 어떻게 보려고 그러는지 미래의 제가 써놓고 봐도 걱정이 되네요.


이건 괜한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소년이 다니던 고등학교는 평소에는 선생님들이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엄하게 하셨지만, 내신시험 보기 일주일 전에는 감독을 전혀 하지 않으셨답니다. 그래서 소년은 평소엔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내신시험을 보는 일주일 전부터는 정말 이곳이 천국인 것인가 싶을 정도로 풀어졌습니다. 그 증거로 시험기간 동안의 소년의 생활패턴을 첨부합니다.


1교시 시험 보기 5분 전인 오전 8시 55분에 기상하여 교실로 이동

오전 서너시간 시험을 보고 난 후 점심 먹고 바로 취침

저녁 7시 야간 자율학습에 들어가서 다음 날 과목 4시간 동안 공부

10시나 11시에 취침하여 익일 오전 8시 55분에 기상


그래도 중간에 공부하는 시간이 있긴 있었네요. 이렇게 따져보니 하루에 17시간을 잠에 투자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은 잠을 너무 자서 밤에 공부 끝내고 들어가서 자려고 하는데 2시간을 뒤척여도 잠이 안 오길래, 할 수 없이 새벽에 공부하러 갔던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당시 소년의 친구였던 구모씨 왈.


와, 이 시간에 널 여기서 보다니


소년의 시험기간 당시 일과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시험을 보는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소년은 시험을 보면서 대부분의 과목을 20분 이상 넘겨본 적이 없었거든요. 시험을 볼 때 소년의 신념은 단 하나,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였으니까요. 괜히 모르는 걸로 고민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 나와서 다음 시간을 공부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뭐,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인 것 같긴 해요. 그렇게 공부했기에 소년은 내신 8등급이 나왔을 때도, 감지덕지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하는 파렴치한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 소년은 평소에 고이고이 아껴왔던 <오, 나의 여신님> 티셔츠를 남방 속에 껴입고, 고등학교 입시 때와 마찬가지로 만화책을 들고 수험장으로 나섰습니다. 소년은 요샛말로 말하자면 오덕이 충만한 사람이었거든요.


뭐, 예상했던 대로 소년은 수학과 암기과목에서 반타작을 했기에 200점 만점에 154점 정도를 맞았답니다. 그래요,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 그래도 수학은 좀 노력 많이 했었네요. 암기과목은 평소에는 거의 안 보고, 시험 볼 때가 공부하는 시간인 느낌이었지만요. 그래도 언어와 외국어는 실수로 하나씩 틀렸기 때문에 그나마 저 점수가 나온 거랍니다.


소년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까지 어떤 대학이나 어떤 학과에 가야 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자신을 폐인의 길로 이끈 일본만화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어 관련학과가 서울대와 연세대에 없었기 때문에 소년은 자연스럽게 고려대 일어일문학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소년이 원서를 쓰고, 본고사 시험을 보는 것이 아마 가장 판타스틱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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