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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r 25. 2020

사이드 스토리_03

03. 소년의 대학교 입학원서 전쟁

소년은 성장하여 드디어 대학교 입학원서를 쓸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소년은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터라, 대학이름도 스카이 밖에 몰랐답니다. 그나마도 소년이 다녔던 학교에서 스카이 스카이 해서,


아, 대학은 스카이 중에 하나 들어가야 하는 거구나


라고 세뇌받았던 결과였던 것이죠. 학벌만능사회에서 가고 싶은 대학이 스카이 밖에 없었다는 것만 들어보면, 소년이 뭔가 스카이 캐슬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그냥 소년은 너무 순진했던 거에요. 사실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었는데, 주위에서 이름 들어본 대학이 몇개 없었고, 그 몇개가 최상위권 대학이었다는 것이었을 뿐이랍니다. 소년이 순진했다는 증거로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란에 당시 유명했던 <시티헌터>라는 일본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청부업자라고 쓰고 교무실에 끌려갔던 적이 있을 정도라는 것을 밝힙니다.


소년은 그 당시에 가고 싶은 곳은 정하지 못 했지만, 평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은 하나 있었답니다.


지금은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질 때 준비가 부족해서 못 가는 경우는 없도록 하자.


그래서 나름대로 꾸준하게 공부는 해왔지만, 소년의 공부는 엽기적으로 언밸런스했기 때문에 원서를 쓰는 것이 정말 애매한 상황이었답니다.


일단 평소 내신시험볼 때 놀았기 때문에 내신이 15등급 중에 8등급이었습니다. 얼마나 놀았냐에 대해서는 지난 글들을 보시면 알게 되실 거에요.


수학능력시험은 언어와 외국어 쪽은 만점 가까이였지만, 수학과 탐구 쪽은 반타작 정도였습니다. 뭐, 탐구 쪽은 거의 공부 안 했으니까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소년은 수학을 가장 많이 공부했지만, 뭐 어쩌겠어요.


하지만 대학별 본고사 쪽은 나름 소년이 꾸준하게 공부해서 승산을 점칠 수 있었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소년이 자신의 수능점수와 내신을 전화로 입력하면 지원가능한 대학과 학과를 알려주는 전화서비스가 있어서 이용해 봤는데, 친구 구모씨와 같이 해본 결과 소년은 충남대에 지원가능한 학과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소년은 그다지 굴하지 않았지만요.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소년은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정해야 했답니다.




담임선생님은 소년이 본고사에 승산이 있음을 알고, 서울대 농경제학과나 불어교육학과 같은 곳에 지원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서울대에 가더라도 관심이 없는 농업 쪽은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불어교육학과 쪽은 왠지 여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서 혹하긴 했지만 불어 쪽에 흥미를 붙일 구석이 전혀 없어서 패스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외국어 쪽으로 생각이 미치자, 소년이 중학교 때부터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며 독학으로 익혀왔던 오타쿠식 일본어가 얼마나 맞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사실 소년의 고등학교 시절의 반 정도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리만 카세트 테이프로 더빙해서 하루종일 듣고 다니면서 대사를 혼자 따라할 정도로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을 정도라서요. 그래서 소년은 그냥 흥미위주로 대학교에 가서는 일본어를 공부하면 재밌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과는 일어일문학과나 일본어학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대학은 정말 심플하게 결정이 나버렸습니다. 스카이 중에 일본어 관련학과가 있는 곳은 딱 고려대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요. 한국외대 일본어학과가 있긴 했지만, 거긴 소년이 가기엔 너무나 벽이 높았던 곳이었죠. 이건 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나중에 끝까지 읽어보시면 실제로 그러했음을 이해하실 거에요.


원래 소년은 <오, 나의 여신님> 이라는 만화의 주인공이 자동차학과라는 것에 감명을 받아 고등학교 2학년 말에 갑자기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겠다며 담임선생님에게 상담을 신청했던 전적이 있을 정도로 순수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소년의 미래를 위하여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고려대 정도는 네가 쉽게 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서울대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좋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소년은 그런 부분에선 매우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주제파악을 잘 하고 있었답니다. 소년의 내신과 수능성적을 종합해 봤을 때, 서울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걸 말이죠. 그래서 일주일 정도 담임선생님과 원서를 어디로 쓸 것인가 매일 싸움, 아니 상담을 했었답니다. 담임선생님이 더 높은 곳에 써달라는 학생에게


거긴 네 성적으로 안 돼


라고 말한 경험은 많으셨을 것 같은데, 더 낮은 곳으로 써달라고 말하는 학생은 아마 별로 못 보셨을 것 같기도 하네요. 흠, 당시 소년이 다닌 학교 상황으로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긴 하지만요.


그리고, 드디어 원서 마감일 바로 전날 밤, 소년은 고등학교 시절 단 한번도 해보지 못 한 무단이라는 걸 해보았답니다. 여기서 무단이라고 하는 것은 소년이 다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사감선생님의 허락을 맡지 않고 무단으로 튀는 걸 말하는 거죠. 기숙사에서 20분 걸어나가면, 시골 호프집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새벽까지 맥주와 치킨을 먹고 기숙사에 들어와 잤답니다.


그리고 소년은 숙취 때문에 오전에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소년의 아버지가 원서접수를 위해서 소년을 데리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소년은 원서를 마무리지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숙취로 입에서 술냄새를 풍기면서 담임선생님과 최후의 상담을 시작했답니다. 술냄새에 쩔어서 씻지도 않고 원서를 쓰러온 학생을 보며 어이가 없었을 소년의 담임선생님에게 제가 대신 사죄의 말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소년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의 설득이 무의미하다라는 결의를 읽으신 것인지, 담임선생님은 그냥 소년의 뜻에 따르기로 하셨답니다. 의외로 술 취한 채로 원서 쓰러 간 것이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1지망은 어디더냐?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입니다.


그럼 너의 2지망은 어디더냐?


고려대 경영학과 입니다.


어허, 그럼 너의 3지망은 어디더냐?


고려대 법학과 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폭발하셨습니다.


야, 원서 갖고 장난 치냐!


...


아니, 저는, 아니지 소년은 필사적으로 항변했답니다.


전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아니면 안 갈거에요!
경영학과나 법학과 따윈 붙어도 안 갈거라구요.
이 원서는 장난이 아니라 그 각오의 표출입니다!


라고 말이죠. 실제로 소년은 경제나 법, 정치 쪽 공부를 엄청 싫어해서 대학 가서도 그것을 공부하는 건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하지만 뭐 일어일문학과 떨어지고 2지망이나 3지망으로 경영학과나 법학과 붙었으면 재수하기 싫어서 갔을 것 같긴 하네요.


담임선생님은 이러한 말을 하는 소년을 보고, 히익 오타쿠, 어이가 없으셨던지 그냥 포기하시고 소년의 생각대로 원서를 써주셨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3년간의 즐거웠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짐을 싸서 학교를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서,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한국외대 일본어학과만 원서를 접수하였습니다. 몇군데 원서를 더 받아오긴 했지만, 접수비가 좀 비싸서 소년은 돈 낭비를 하는 것이 싫었으니까요.


고려대 대학별 본고사의 경우는 이틀에 걸쳐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소년은 시험기간 동안 대학교 기숙사에 머물 수 있도록 신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외대는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선배가 한국외대에 들어가서 자취를 했었기 때문에, 선배네 자취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본고사 시험까지 열흘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책을 단 한번도 펴보지 않고, 놀았답니다...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이제부터 클라이막스에 들어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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