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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r 30. 2020

수학 사색_01

01. 수학문제를 푸는 3단계

과거에 내가 택견을 수련했을 때, 나는 힘이 아니라 기술로 이기고 싶었다. 이건 내게 택견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 힘으로 이기는 것보다 기술로 지는 것이 낫다고 가르쳐 주셨고, 그게 내게는 매우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남들이 보기에 별것 없어보이는 딴죽(발바닥으로 상대의 복숭아뼈 근처를 차서 중심을 허무는 기술) 같은 것을 매우 열심히 수련했다.


그래서 시합을 할 때 나는 이기기 위해서 상대를 붙잡고 힘을 끙끙 주면서 대치하기 보다는, 기술을 깔끔하게 걸어보고 안 되면 물러나서 다시 기술을 시도하곤 했었는데, 그러다보면 가끔씩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다.


보통은 머릿속에서 어떤 기술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시도를 하는데, 가끔씩 내 몸이 어떤 기술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기도 전에 상대의 반응에 맞춰 내 몸이 저절로 움직여서 아무 힘도 안 들이고 이긴 적이 꽤 존재한다. 그런 경우 이기고 난 다음에도 내가 어떻게 해서 이겼더라 하고 한참 고민했었고, 그 멋진 감각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서 또 기술연습에 열중했었다. 청춘이었지...




나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문제 풀이가 수학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나의 공부스타일은 정석에 나온 개념을 한번 읽고, 바로 문제풀이로 들어가서 유제이고, 확인문제이고, 연습문제이고, 그냥 무조건 풀었다. 아,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내가 수학문제를 정말 풀었던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냥 거의 다 풀이를 외웠다.


그 당시의 나는 문제를 보는 순간, 고민이라는 과정 없이 바로 머리 속에 입력된 풀이방법대로 손이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었다. 그렇다. 마치 택견을 수련했던 때처럼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착한 아이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무술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뇌를 거치지 않더라도 제대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수학공부의 목적 자체가 머리를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뇌를 안 쓰는 것은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이 아니다. 뭐, 시험문제를 빠르게 푸는 것이 목적이라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로, 수학문제를 풀 때 생각 좀 하고 가자는 의미에서 수학문제를 푸는 단계를 좀 구분하도록 하자.




우선 수학문제를 보고 가장 먼저 해야할 1단계는,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를 잘 읽어야 한다. 어디서 돌 날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하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수학문제에서 말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한다. 거창하게 문장식 문제나, 스토리텔링 수학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기본적인 조건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한다는 말이다.


과거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 혼자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면 풀지 못 하지만, 문제를 같이 읽어가면서 상황을 설명해 주면, 중간에 아! 하고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라며 풀이방식을 생각해 내는 학생이 몇명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수학문제를 이해하는 영역과 수학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이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하냐면, 보통 아이들이 수학문제를 풀 때 "나는 못 풀겠어" 하고 포기를 할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두가지 영역 중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야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래와 같이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제의 의미 자체를 이해 못 한다면 개념을 다시 설명하는 동시에 문제를 해석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문제를 다 이해하는데 풀이방식을 생각하지 못 하는 것이라면, 풀이방식을 고민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잘 읽지 못하는 것에도 여러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수학을 열심히 하는 공부하는 아이가 문제를 읽는 것에 장애를 보인다면, 대부분 문제를 외워서 풀기 때문에 문제를 안 읽는 것이 습관화된 경우가 많다. 문제의 조건을 따지기 보다는 그냥 문제에서 나오는 숫자들만 재빠르게 캐치하고 바로 몸에 새겨진 방법대로 계산해서 푸는 경우를 말한다. 뭔가 열심히 하고 점수도 대부분 90점 이상 다 맞는 아이가 실수를 자주 한다면, 보통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 정도까지 진행되었으면 이 습관을 고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수학문제를 대할 때 심리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아이들도 문제를 잘 읽지 못 한다. 이 심리적인 거부감은 보통 수학공부를 할 때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면, 예를 들면 혼나거나 맞거나, 혹은 무시당하거나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 경우 수학점수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 수학을 쳐다보기도 싫어할 것이다.


수학적인 독해능력만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이 경우가 가장 평범한 편이다.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수학적인 기호는 사실 고도로 압축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대입을 해보지 않으면 문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수학적인 훈련이 더해지면 가장 쉽게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전반적인 독해능력이 모두 떨어지는 경우는, 솔직히 수학교육 쪽에는 답이 없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독해능력이 올바르게 정착되지 않았을 때, 여러가지 이유로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발생한다.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나, 조금이라도 복잡한 과정이 들어간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한다. 또한 텍스트, 즉 글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 이건 국어의 영역이다.


위와 같이 수학문제를 제대로 읽지 못 하는 원인 중 큰 것만 추려봤다. 물론 아이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원인 또한 더 자세하게 나누어야 겠지만,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도록 하자.




자, 수학문제를 푸는 1단계가 문제를 잘 읽는 것이라면, 이를 넘겼을 때 마주치는 2단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뭔가 돌이 날라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착각이라고 치자.


너무나 당연한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진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 더 보충설명을 하도록 하자. 나는 수학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수학적인 개념을 깊게 물어보는 경우와, 또 하나는 특별한 발상이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입시수학에서 대부분의 고난이도 문제들은 수학적인 개념을 깊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풀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는 수학문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대여섯장의 연습장을 소비하는데, 보통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면 숫자를 몇개 더 대입해서 규칙을 찾아보거나 한다. 어떤 경우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문제들도 존재하는데, 이럴 때는 감이 올 때까지 써본다.


그래서 보통 수학문제를 푸는 1단계인 문제를 잘 읽는 능력만 갖춰도 대부분의 수학문제들은 쉽게 풀 수 있다.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면, 자연스럽게 숨겨진 규칙을 발견하고 문제의 해결로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1단계에서 문제를 다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대수학자인 가우스가 초등학교 때 발견한 1부터 100까지의 합을 구하라는 문제가 있다. 문제의 내용 자체는 쉽게 이해가 갈테니 1단계는 누구나 패스할 수 있을 것이다. 풀이법 또한 사실 간단하다. 그냥 무식하게 문제에서 원하는대로 다 더하면 답이 나온다. 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수로 틀릴 수 있긴 하겠지만, 문제 자체를 해결한다는 점에선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가우스는 이 문제를 이렇게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한 발상을 통해서 해결했다. 나는 그 발상을 알고 있으나 지면이 모자라서 증명은 생략... 이 아니고 다 알 것 같아서 굳이 쓰진 않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수학문제집에서는 이렇게 1단계에서 해결 안 되는, 문제의 내용은 이해가 가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문제들이 다수 존재한다. 실제로 수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를 시험에서 마주치면 그냥 패스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이 문제 풀다가 시간을 엄청 잡아먹고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못 푼다면 망하는 거니까.


보통 이런 문제들은 시험을 안 볼 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도전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 그 풀이법을 그냥 외운다면, 이미 수학공부는 수학공부가 아니게 되니까. 만약 학원에서 그런 고난이도 문제집을 교재로 선정해서 수업을 진행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2단계에서 얻어야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퇴화될 확률이 매우 크니까 하지 말도록 하자.


왜냐하면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수업진도에 맞춰서 공부하다 보면 문제를 지긋이 고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지긋이 고민할 수 없게 된다면, 있던 재능도 다 망가져 가니까 정말로 하지 말도록 하자. 문제집을 산 돈이 아까워도 다 풀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시키는 것이 좋다.




문제를 잘 읽고, 문제를 잘 해결했으면 끝난 거 아닌가. 다음 단계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 단계가 있긴 하다. 마지막 3단계는 자신이 생각해낸 풀이를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서술형 문제인데, 예전 대학별 수학 본고사라는 시험에서는 이 3단계가 매우 중요했다. 답만 맞았다고 끝이 아니고 그 답까지 가게 된 논리적인 풀이방법을 서술하라는 건데, 훈련되지 않았다면 3단계를 잘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 능력 또한 국어와 연관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을 정말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논리적으로 풀어쓰는 능력이 특출났기 때문에 나름 대학교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문제를 잘 푸는 누구랑 문제풀이를 잘 기술하는 나와 합쳤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


내가 이 3단계를 잘 하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언어능력이 특출났다. 그런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도형을 하면서 증명노트를 예쁘게 썼던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 때 나는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다 같은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 매우 재밌었다. 아니, 처음엔 어떤 느낌이었냐면, 지금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공스타그램 같이 플래너 꾸미는 것처럼 가죽표지의 노트에 세라믹펜으로 가정, 증명, 결론을 마치 대학생처럼 나누고 글씨를 예쁘게 써서 보는 것이 재밌었다고 할까.


그래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정리를 그 노트에 예쁘게 증명해서 정리하는데, 정리하는 김에 더 좋은 표현을 찾아 고쳐쓰고 하다 보니까 논리적인 과정까지 보게 되어서,


이래서, 저래서, 그런 거구나.
결코 저래서, 그래서 이런 것이 아니구나.


를 깨닫게 되었다. 위의 예시문을 잘 봤으면 한다. 저 순서가 달라진 것이 매우 중요하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면 안 된다는 말이다. 좀 더 실감나는 예시를 들어보자면,


A :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이 왜 같은지 증명해 봐.
B : 그거야 두 밑각이 같으니까요.


같은 거다. 저런 바보 같은 사람이 있냐고 하겠지만, 굉장히 자주 보이는 실수다.


저렇게 증명을 정리하게 만들었던 나의 동기는 사실 공부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매우 컸다. 그래서 애들은 바보 같은 걸 해도 열심히 푹 빠져서 하면 뭔가를 배워도 배운다는 거다. 처음엔 그냥 교과서의 증명을 따라쓰는 수준이었는데, 예쁘게 쓴 걸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읽다가 뭔가 논리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고, 더 좋은 표현을 고민하게 되었으니까.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자, 이렇게 수학문제를 푸는 3단계를 정리해 보았다.


문제를 잘 읽고, 잘 풀고, 잘 설명하는 것.


심플하게 이게 결론이다. 아, 그 긴 글을 이렇게 요약하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시간낭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마치 공부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국영수 위주로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면 됩니다 같은 느낌이랄까.


예전에 나는 이렇게 3단계의 구분을 하면서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단계는 1단계라고 말했었다. 그 이유는 1단계가 머리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정도 가르치면서 다시 고민해 보니, 국어영역도 만만치 않게 머리를 타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2단계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또한 계발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방법에 따라서는 충분히 계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수학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실용적인 조언을 해주자면, 수학적인 개념을 공부하고 문제를 풀 때는 반드시 문제를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 보통은 분석하는 것보다 조금 끄적대다가 바로 답지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를 분석할 능력이 안 되면 고등학교 수학이나 고난이도 문제에서는 아무리 해도 성장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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