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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Apr 01. 2020

수학 사색_02

02. 개념을 적용하여 문제를 푼다는 것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수학을 외워서 풀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공부를 조금 잘 한다고 소문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수학문제를 워낙 어렵게 내야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외워서 풀면 왜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풀면 우리 내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과정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아래의 그림을 보도록 하자. 이 그림에서 <개념> 이라고 쓰여있는 투명한 원은 공부하는 학생의 머릿속 어딘가에 있을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과서를 읽거나,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이렇게 자기의 머릿속 안에 관련된 개념뭉치가 생길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의 이해력에 따라 이 원이 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생긴다. 아무 것도 안 생긴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수학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어영역의 문제이니 책을 조금 더 열심히 읽도록 하자.


그리고 밑에 있는 작은 파란 원들은 이 개념을 갖고 앞으로 풀어야 할 각각의 문제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개념을 처음 공부했을 때 이 개념과 각각의 문제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자, 이제 개념을 공부했으니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토로하듯이, 개념 배우고 바로 문제에 적용시키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을 거다. 조금 고민하다가 안 되면, 바로 모범답안을 참고하거나, 선생님에게 물어보거나, 뭐 인강을 들으면 되겠지. 그렇게 해서 문제들을 한시간 동안 열심히 풀었다고 하자. 이런 방법으로 많은 문제들을 풀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될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분홍색 선은 각각의 문제의 풀이에 대한 학생들의 기억력을 의미한다. 이제야 비로소 개념과 문제들이 관계지어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분홍색 선이 각 문제와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고, 그 굵기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미약하다는 부분이다. 결코 내가 손이 떨려서, 그림을 못 그려서 저 모양이 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



분홍색 선은 각각의 문제의 해법에 대한 여러분의 미약한 기억력을 의미하는데, 여러분은 수학문제를 머리를 써서 스스로의 힘으로 푼 것이 아니라 많은 모범답안들을 외워왔기 때문에, 문제와 개념을 연결하는 분홍색 선은 그 굵기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이 아주 미약합니다.


앞에서도 얘기한 바와 같이 수학을 바탕부터 쌓아오지 않고 처음 공부할 때에는 이렇게 문제에 대한 유형별 해법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문제를 경험할 수 있고, 중학교 수준의 평범한 난이도라면 시간대비 효율이 매우 좋기 때문에 열심히만 따라간다면 공부 안 했던 아이들조차 기본 바탕이 좋으면 급격한 성적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조차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서 단기간에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중학생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주입식 교육의 학원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중학교 수학은 문제 유형이 많지 않고, 문제의 수준도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하던 못 하던 간에,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노력만 있다면 수학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고등학교 수학부터이다.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문제유형도 많을 뿐 아니라 문제의 난이도 또한 중학교와 비교할 수 없다. 개념에 대한 이해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묻는 문제들, 즉 특별한 발상이 요구되는 문제들은 풀이법을 찾는데 며칠 혹은 몇달이 걸릴 수도 있을 정도인데, 이러한 문제들을 딸랑 5분 고민해 보고 풀려고 한다는 건 글쎄, 조금 과한 욕심이 아닐까. 예전에 연재되었던 정글고라는 웹툰에 나오는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걸 인용해 보고자 한다.


천재, 물론 있죠. 하지만 넌 아니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은,


딸랑 5분 정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안 되면 적당히 문제 틀려주고,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오답노트 좀 예쁘게 만들어서 문제를 외우는 것


이라서 문제인 거다. 이와 같은 방법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면, 오답노트처럼 눈에 보이는 공부의 결과물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자기만족감은 충족될지언정, 결국 그 문제에 대한 해법들을 다 기억하지 못 하는 시기가 찾아오게 되니까. 위 그림에서 보자면, 각 문제들과 개념을 연결해 주는 분홍색 기억력이 점점 얇아져서 결국 끊어지게 되는 거다.


그렇게 되면 공부하는 사람은 다시, 


또 오답노트를 찾아보고,
아 이거 예전에 풀어봤던 문제인데 왜 못 풀었을까.
정성이 부족한 거야. 다시 외우도록 하자.


라는 자기비하의 수준으로 흘러가게 된다. 아, 예전 고등학교 시절 쓰라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


그런데 이 과정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면 공부하는 사람의 머릿속의 개념은 점점 작아져서 결국 아주 눈꼽만큼 남아 사라지고, 각 문제들에 대한 해법만 남아있게 된다. 해법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어디냐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설사 자기가 엄청나게 수학을 많이 공부해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나오는 족족 다 외웠다 할지라도 수학문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나오면 끊임없이 외워야 한다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걸 겪어본 사람은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못 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해봐서 안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뭐, 답은 뻔하다.


공부한 개념을 어떻게든 문제에 적용한다.


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분홍색으로 표시된 문제를 보니 그나마 만만해서 개념을 적용해서 풀려고 노력했는데, 하다보니까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서 1시간 걸려서 겨우 풀었다고 치자. 뭐 못 풀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얼래? 친구들은 1시간에 20~30문제를 풀었고, 나는 1시간 동안 1문제도 제대로 못 풀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까, 개념을 문제에 적용해서 고민 많이 해서 푸는 방법이 정말 비효율적으로 보이긴 한다.


다른 애들은 20문제 풀 때 겨우 난 한 문제 밖에 못 풀다니 난 정말 수학에 재능이 없나봐


라고 자괴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 한문제를 푼 사람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념이라는 것의 속성은 문제에 적용시키려고 하다보면, 그 문제의 풀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개념이라고 하는 원 자체가 커지게 되니까 나중에 비슷한 유형들은 그냥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


기억력으로 문제의 해법을 외우려고 하다보면, 개념을 쓸 일이 없어서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그에 대한 연결고리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지는 것에 비해, 개념이라는 원 자체가 커지면 비슷한 유형의 많은 문제들이 더 커진 원에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 푼 것은 한문제 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은 개념을 묻는 다양한 변형문제들을 더 쉽게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설명해 주고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오답노트는 커녕 필기도 하지 말라고 한다. 누군가의 방법을 따라하거나 외우려고 하면, 스스로 생각을 안 하는 버릇을 들이게 되니까. 문제를 틀렸을 때 풀이를 보고 문제를 분석하는 것도 유효한 공부방법의 한가지이긴 한데, 그 방법이 수학에서는 독과 같다.


왜냐하면 답지의 풀이를 아무리 분석해 봐야, 그 풀이를 정리한 사람의 최초 사고과정은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풀이는 문제를 완전히 풀고 깔끔하게 정리한 마지막 사고과정이지, 문제를 처음 볼 때의 최초의 사고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은 시험을 볼 때,


어, 이거 풀었던 문제인데,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를 외우더라도 최초의 사고과정이 있어야 마지막 사고과정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인데, 처음에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만 알고 있으면, 실제로 문제를 풀 때 써먹을 수 없다. 항상 나중에 답을 보고,


아 맞다 이렇게 풀었지.


하고 뒷북만 치게 된다.


물론 개념을 적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다보면 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래도 되나 하고 걱정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자꾸 하다보면 풀이를 기억 안 하려고 해도 문제의 유형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외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읽으면서 대충 문제의 유형이 분석되고, 풀이방법도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그래서 나중에는 계산도 안 하고 눈으로만 훑고 지나가게 될 정도로 빨라지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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