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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y 06. 2020

수학 사색_05

05. 개념은 반드시 문제를 통해서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옛날 내가 몸담았던 학습관련 사이트에서 수학에서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으로서, 사람들이 내놓은 것은 바로,


교과서를 보라!


였다.


그 이유는 수학능력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교과서에서 다루는 개념만으로 문제를 작성하기 때문에, 교과서 개념을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문제집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개념들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 가장 컸다. 뭐, 실제로 문제집에서 다루는 개념들 중 어떤 것은 이제 우리나라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도 좀 있었으니까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최근에 나오는 교과서에서 다루는 개념들은 설명이 쉽고,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는 편이라 친절하기까지 해서 나도 교과서를 개념서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개념설명 뿐만 아니라 교과서 문제들도 정말 필요한 것들 위주로 다루기 때문에, 교과서 문제를 정말 아무 도움 없이 한문제 한문제를 정성스럽게 고민해 가며 푼다면, 아마 그것만으로도 좋은 실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이후엔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라고 한다. 이것도 옳은 주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항상 어떤 조언이나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곡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당시에 내가 본 댓글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교과서로 개념을 20번 정도 돌려서 이제 외울 정도인데, 수학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였다. 확실히 20번 정도 교과서로 개념을 보고 또 보면 외울 것 같기는 한데, 그게 과연 수학공부의 끝일까. 앞서 썼던 글에 나는 수학에서의 개념이란 것은, 보드게임을 하기 위한 규칙이라고 했었다. 그 학생의 말은 이런 것과 같다.


루미큐브 라는 게임의 규칙이 쓰여있는 종이를 20번 정도 보았는데, 왜 못 이기죠?


우리가 보드게임할 때 모든 규칙을 처음부터 다 숙지하고 게임을 하진 않는다. 그래서 보통 첫번째 판에서는 승패에 관계없이 규칙을 체감시키기 위해 대략적인 분위기를 알려주지 않는가. 처음엔 규칙을 몰라도 조금씩 당해보면 규칙도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남의 전술도 배우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만의 전술도 만들게 된다. 그래, 딱 이 느낌이다.


어떤 공부를 할 때, 처음 책을 한번 읽거나 누구에게 설명을 한번 들었다고 해서 한번에 완벽하게 모든 것이 이해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지금까지 내 주위에서 본 적은 없다. 모든 지식은 자신의 안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수학을 공부할 때는 그 개념을 숙성시키는 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개념 그 자체만으로는 지식에 불과하며, 초보자는 그 지식을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의문 조차 갖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학을 공부할 때 유형문제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 개념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보여주는 문제들이다.


나는 수학을 가르친지 몇년이 지나는 동안 고등학교 문과 수학만까지만을 가르쳤다. 그 이유는 내가 고등학교 때 문과를 나와서 이과수학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아니 고등학교 2학년 말쯤에 자동차학과를 가보겠다고 친구의 이과 정석책을 빌려서 잠시 본 적이 있긴 했는데, 그 압도적인 지식량에 놀라 허겁지겁 책을 덮고 조용히 내 원대한 꿈을 반납했던 기억이 있긴 하다. 뭐, 어려워서 못 가르쳤다는 말이다.


그런데 몇년 후에 고등학교 이과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때가 왔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고등학교 이과 수학책을 펼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당장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그냥 다 외워서 가르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사실 그냥 문제만 생각한다면, 내용의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간에 풀이를 외워서 가르쳐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그때 내게 배웠던 학생들에게는 선무당이 사람잡았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 이후엔 종종 이과수학을 가르쳐야 할 일이 생겼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나는 문과수학을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는 수학에서의 올바른 공부 방식이 어떤지를 이미 느꼈고, 어떤 것이 이해한 상태이고, 어떤 것이 이해하지 못 한 상태인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과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


그것이 나는 너무나 찝찝했다. 그 당시에 내가 처음부터 막혔던 챕터는 7차 교육과정에서는 사라진 <일차변환>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 <벡터> 같은 것도 몇년간 나를 괴롭히긴 했지만, 뭐. 항상 첫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사실 개념도 몇번 읽어보고 문제도 몇번씩 반복해서 풀어봤다. 그 결과는 아주 예전에 내가 수학을 그냥 외워서 풀 때의 그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정말 하나하나 개념을 파고 들었다. 첫번째 유형문제를 풀 때 공식을 바로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문과적인 수학지식을 총동원해서 그림까지 그려가며 풀었다. 아마 몇시간 걸린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뭔가를 해결하고 나니 다음 유형도 비슷하게 풀 수 있었다. 신이 나서 나는 계속 4개 정도의 유형을 정복했는데, 5번째 유형부터는 또 막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개념 페이지로 돌아와서, 내가 신이 나서 풀었던 그 부분의 내용을 다시 읽어봤는데, 내가 풀었던 과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큰 의미에서는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유도과정을 대충 머리 속에 넣고 나니, 거기 나와있는 공식을 외우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안 풀렸던 다음 유형을 위해 또 개념을 공부했는데, 역시 개운한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그 유형문제도 개념을 공부해서 안 지식과 내 문과적인 지식을 다 통합하여 몇시간 걸려서 결국은 해결해 내었다. 그렇게 했더니 또 몇개의 유형이 해결되었다.


이렇게 한 챕터에서 이런 과정을 서너번 정도 반복하니까, 그 챕터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그 챕터는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이과수학의 개념들을 홀로 정복하는데 또 몇년이 걸렸다.




이 경험은 내가 마치 학생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문과수학을 너무 오랫동안 공부한 나머지 나는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이해하지 못 했는지,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어떤 느낌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게도 처음인 이과수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학생들이 수학을 처음 공부하는 과정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개념만 백날 파고 들어봐야 수학적인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학의 개념은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통해서만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톱이라는 도구가 있을 때 톱의 크기라던가 무게라던가 모양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톱으로 나무를 잘라봐야 힘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가, 각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톱으로 나무를 잘라보지 않으면 톱은 그냥 톱으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톱이 태어난 목적과 맞지 않기도 하고.


그리고 개념을 처음 공부할 때는, 그 문제에 대한 특이한 풀이법이나 꼼수, 혹은 상급과정의 지식들로 풀어서는 안 된다. 조금 느리더라도 반드시 그 개념이 유도되는 흐름에 따라, 문제를 파고 들어야 한다. 공부를 깊게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그 챕터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의 흐름이 존재하는데, 그걸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개념의 흐름, 굳이 나무와 숲으로 비유하자면 숲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뭐, 어쩌라고.


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그것을 꿰뚫고 있으면, 다 까먹어도 나중에 다시 세우기가 쉽다.


그 전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종종 나는 화두라고 표현하긴 하는데,


일차방정식은 등식의 성질, 우리가 이항이라고 부르는 기술로 푼다.
그런데 왜 이차방정식은 등식의 성질로 풀 수 없는가.


이런 사소한 의문들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은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 이차방정식을 다시 공부하면서 저 질문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해결됨으로써 이차방정식에 대한 내용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최소한 사고의 폭이 아주 많이 넓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결론. 수학의 개념은 그 자체가 아니라 적용될 때 빛을 발한다! 왠지 중2병 스러운 결론인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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