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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y 18. 2020

그냥 끄적_03

가르치는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

예전에 한번 썼던 적이 있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요가지도자 자격증이 있다.


내가 처음에 접했던 요가 아사나는 책과 비디오에서 본 것으로 정해진 것을 반복해서 수련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아사나를 깊게 배워갈수록 의아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같은 아사나라도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같은 선생님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같은 아사나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셨다.


나중에 내가 깨달은 점은, 깨달았다기 보다는 배운 사실이지만, 사람의 몸과 정신, 그리고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인마다 수행하는 아사나는 그에 맞춰서 달라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같은 아사나라도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니까. 또 시간이 지나 사람이 바뀌면 같은 아사나라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은 배우려는 사람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각 아사나에서 어떤 사소한 주의집중이나 근육의 작은 움직임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지식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어야 가르칠 수 있다. 뭐, 이렇게까지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수준의 지도자가 정말 존재하냐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단언컨데 분명히 있다. 나는 요가를 수행하면서 그런 선생님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차마 내가 요가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말을 잘 못 한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나는 수학을 가르치니까 수학교육에 한정되긴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무리 좋은 수학교육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배우는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조차 모르면서 자기의 교육방식에 배우는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보통 그런 식으로 가면, 아이들을 멍청하다고 여기게 되니까.


대충 특이한 케이스를 몇가지 제시해 보자면,


Case 01.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친 학생이 있었다. 정말 속이 터지는 학생이었다. 틀린 문제를 설명해 주려고 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설명 안 들으려고 그냥 집에 가버린 적도 있었다. 처음엔 나를 정말 싫어하는 줄 알고, 어머님에게 전화 드리고, 혹시 아이가 나를 싫어하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내 교육방식은 아이가 나를 싫어하면 성립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싫어하지는 않는단다. 그래서 계속 가르치기로 했다.


어느 날인가, 설명을 하려고 옆에 앉혔더니, 갑자기 이 아이가 당돌하게,


제가 설명을 할테니 들으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들었다. 그런데 나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몇가지 논리가 부족한 부분만 찝어서 그 부분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는 그 아이의 수업 때마다 아이의 설명을 듣는 입장이 되었고, 이 방식은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Case 02.

중학생이었던 한 아이는 공부에 그냥 관심이 없었다. 개념설명을 하고 어디까지 문제를 풀어오라고 하면, 다 풀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애초에 잘 풀려고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뭔가를 가르쳐 주고 싶어도 이렇게 관심이 없는 학생이 있다. 그렇게 6개월 이상이 지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기간 동안 내게서 뭘 배워가진 못 했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유인물을 한장 주고 한 페이지만 풀어오라고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하게 사각사각 연필로 쓰는 필기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한 이삼십분 정도 정말 뭔가를 풀어서 내게 내밀었다. 설마 하고 채점을 해봤는데, 거의 다 맞은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이 아이의 집중력과 머리가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 집중력이 발휘되는 때가 별로 없다는 거.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수학적인 지식을 전해주기보다 집중력이 발휘될 수 있는 상황을 더 많이 만들어 주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식으로 유도했다. 뭐, 나중엔 자기가 천재인줄 알더라...


Case 03.

중학생이었던 한 아이는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했다. 다만 수학교육에서 선생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마이너스적인 부분이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교육에 열성적이셨고, 아이가 실패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의 교육계획에 매우 민감해 하셨다. 홈스쿨링을 하는 것이 입시에 더 효과적이라며 자퇴를 고민하실 정도였으니까. 이 이야기의 요점은, 이런 식으로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디자인해 주기 시작하면 아이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주체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 스스로 고민하는 연습을 계속 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그런 걸 만들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당시의 나도 아직 내 교육방식의 체계에 대해 뚜렷한 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장님이 앞을 나아가듯 조심스럽게 나아갔던 것 같다.


어느 날, 이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야 선생님이 스스로 고민하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사실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아이는 그전까지 시키는 대로 뭔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몰입해서 문제를 풀어본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몰입해서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겪어보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아이는 결국 대입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 하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내 기억에서 이 아이가 사라질 무렵, 이 아이에게서 정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처음에 갔던 대학교에 만족하지 못 하교 편입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자기가 편입하고 싶은 대학은 수학시험을 봐야 한다고 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편입학원에서 수학시험을 준비하는데, 자기는 엄청 고민하다가 예전에 내가 알려준 방법을 떠올리면서 수학을 혼자 공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학성적이 잘 나와서 두 곳 모두 합격했는데, 나한테 꼭 고맙다고 전화하고 싶어서 전화했단다.


사실 나는 이 아이를 보고, 내 수학교육방식에 확신을 가졌다. 좋은 수학교육방식은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스스로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그러한 삶의 방식을 아이가 몸에 새길 수 있다면, 인생에서 성공 못 하기 어렵지 않을까. 뭐, 그 교육방식이 꼭 수학일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몇가지 아이들의 예시를 들었지만,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아이들의 상황에 맞춰가며 가르치는 방식을 창의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내 방식에 상대를 맞추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상대의 방식에 나를 맞추고 내가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 배우려는 사람은 배운다는 의지를 내었다는 시점에서 이미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니까, 가르치려는 사람도 최소한 그에 대한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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