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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y 20. 2020

사이드 스토리_06

06. 소년의 한국 외국어 대학교 본고사 이야기, 마무리

소년의 선배는 외대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취방의 시설이 좋지는 않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에도 서울에 오면 그 선배네 집에서 잤던 적이 있어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었던 거죠. 문제는 그 선배가 그 당시에 즐겼던 컴퓨터 게임이었습니다.


<듄2>


이 게임은 예전에 인기가 한창이었던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의 출발점이라고 할만한 게임이었죠. 스타크래프트 장르의 첫번째 인기작이라고 해야할까요. 저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해서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었거든요. 그 선배네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은하영웅전설 4> 라는 일본의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엄청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듄2> 라는 게임은 정말 엄청났던 거죠, 끄덕끄덕.


왜 이렇게 이 게임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느냐면, 네 그겁니다, 그 한국 외국어 대학교 본고사 시험 바로 전날 선배네 집에 갔던 소년은 그 게임에 홀딱 빠져서 밤새 그 게임을 하다가 새벽을 맞이한 거죠. 해가 뜨고 이제 시험을 보러 가야할 때가 되자, 선배는 소년에게 설거지가 필요없는 봉지면 하나를 끓여주었고, 소년은 세수도 안 한채로 시험장으로 출발하였답니다.


소년이 시험장 문을 열고 처음 한말은, 네, 바로 그겁니다.


우라질!


이런 저속한 말을 평소에 쓰지 않았던 소년이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험장 안에는 고려대 본고사 시험장에 있던 그 인물들이 그대로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걔네들이 외국어 고등학교 일본어과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거죠.


한국 외국어 대학교 본고사는 영어 한과목을 보았는데, 이 영어시험은 소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년은 서울대와 고려대 본고사 유형으로 3년 동안 공부했었기 때문에 한국 외국어 대학교와 같은 영어 시험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시험을 보면서 소년은,


대체 뭐래는 거야.


하면서 문제를 대충 풀고 나왔답니다. 소년은 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뭐, 소년은 그 이후로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까지 집에서 띵가띵가 놀다가, 합격자 발표확인 전화로,


1지망에 합격하셨습니다


라는 말에 점프를 거듭하며 부모님에게 합격사실을 아뢰고, 대학생이 되는 첫발을 내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이드 스토리의 주제는 솔직히 말해서 소년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거죠, 뭐. 가끔씩 소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만, 평상심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거에요.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떤 아이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집중을 못 하고 계속 흔들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공부를 꾸준히 잘 하는 애들이라고 주변에 일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런 애들은 보통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크게 신경을 안 쓰거나, 그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애초에 없도록 하더라구요. 그런 걸 보통 자기관리라고 하는 건가요? 소년이 자기관리를 잘 했다는 말은 아닌데, 주변일에 관심이 없던 건 맞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문득 카르마 요가의 가르침이 맞는 것 같아요.


기대하지 말고, 그냥 해라.


이 스토리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굳이 한마디 더 하자면,


선배님, 당신은 내 좋은 형이자 좋은 친구였습니다. 한때는 우리가 평생 같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마 제 무심함이나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지금에 와서 우리는 같이 하지 못 했네요. 그렇게 제가 잃어버린 인연이 얼마나 될까요. 한때는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언제 갑자기 전화 한통화에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인연이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인연이라는 것도 화분과 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선배님 당신이 이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에 당신이 베풀어주었던 모든 친절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섭섭하게 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제 본의가 아니었고, 제가 어리석어서 그랬음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문득 이런 감사와 사과를 해야한다는 것이 우리가 이미 우리가 아니라 당신과 제가 되었음을 실감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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