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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y 27. 2020

수학 사색_06

06. 수학을 하기 위한 마음가짐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이건 참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위 주제에 대해 검색을 좀 해봤는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알이 먼저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 뭐, 나는 전공자가 아니니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 들 수는 없겠지만.


위 주제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위 주제와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주제는 바로,


수학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해야 하는가


바로 이거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학을 공부하면 아이들이 수학을 잘 할 수 있을까. 뭐, 어떤 선생님들은 그건 머리에 달린 거지,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습범위를 고등학교 수학까지로 한정한다면, 머리보다 마음가짐이나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고등학교 후반부에 가서 무너지고, 머리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교육방식에 따라 급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 걸 봐왔기 때문에 이렇게 수학공부에 관련된 글을 써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보통 아이들이 시험에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눈 앞에서 보게 되었을 때, 그들의 내면의 양상은 크게 두가지로 갈라진다.


하나는 과연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또 하나는 이 문제가 어렵게 보이지만, 결국 내가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뭐, 아무 생각 없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일단 제외.


위 둘 중에 어떤 마음을 갖고 문제를 푸는 것이 좋을까. 답은 당연히 두려움이라고 말하면서 반전을 꾀하고 싶긴 한데, 아니 솔직히 말해서 좀 궤변을 섞어보면 두려움이 답이라고 말할 수도 있긴 한데, 여기서는 그냥 평범하게 가도록 하자. 당연히 후자인 자신감 쪽이 수학문제를 풀 때 유리하다. 나도 경험해 봤지만, 수학문제를 풀 때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수학공부를 좀 덜 했을지라도 결과물이 더 좋을 확률이 크다. 이러한 자신감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실력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게 해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수학에서 잘못된 길을 들어서기 전에는 이러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수학시험을 못 볼 것이라는 불안감이나 두려움 따위는 정말 눈꼽 만큼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마 수학을 잘 하는 다른 학생들, 그냥 수학문제 많이 풀어서 점수 잘 맞는 학생들 말고, 정말 잘 하는 학생들은 저 자신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수학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아


뭐, 이런 느낌이다.


그런데 저런 자신감을 얻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여러가지 좋은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라, 자신감을 얻는 것은 굉장히 운빨이지만, 얻었던 자신감이 무너지는 것도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도 한번 없어지고 난 후엔 다시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우연히 보게 된 어떤 문제집의 서문에서는,


그러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문제를 풀어야만 갖출 수 있다


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내가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관찰해본 결과, 그렇게 문제집을 엄청 많이 푼 학생들이 자신감은 커녕, 오히려 자신은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는 것을 더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것이, 정해진 시간 안에 수학문제를 더 많이 풀려면, 한문제당 고민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설명을 듣거나 답을 참고하게 되는데 그 결과 어려운 문제들의 답을 계속 외우게 되는 수순으로 간다.


앞에서도 누누히 강조했지만, 이런 식의 공부를 하게 되면 나중에 그 문제를 다시 풀게 될 때, 그 문제를 한번 풀어봤다는 느낌만 날 뿐 그 문제의 해법은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다. 또, 이러한 학생들의 특징은 어려운 문제들 위주로 풀기 때문에 문제를 풀면 풀수록 틀리거나 모르는 문제가 계속 쌓이게 된다. 뭐, 이 상황에 갖혔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허우적댈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거다. 수학이라는 과목이 아이들에게 좌절인 이유는 죽을만큼 열심히 해도 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아이들은 그냥 자신에게 수학적 재능이 없다고 그냥 포기하게 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다. 수학문제를 열심히 풀어야 자신감이 생길 것 같은데, 열심히 풀면 풀수록 자신감이 하락한다는 아이러니한 부분. 보통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을 모르는 아이는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다가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두가지 양상을 보인다.


많은 문제를 다 외워서 왠만한 문제는 보면 답이 딱 떠오르는 경우

말은 안 했지만, 마음 속으로 조용히 포기하는 경우


아주 극히 드물긴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전자에 해당하는 아이가 있긴 하다. 다만, 이런 아이들에겐 약점이 하나 있는데, 문제가 응용되거나 새로운 유형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못 한다. 또한 여기에 드는 것조차도 아주 극히 일부의 독한 사람들 뿐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수학을 암기라고 하는데, 그 방법으로 나아지는 사람 자체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후자의 루트를 탄다.




위에서처럼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된다면, 수학에서의 자신감은 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오랜 기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나는 깨닫게 되었다. 수학에서의 자신감은 아이들이 수학을 잘 하든, 못 하든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잘 하는 아이들조차 자신감이 없고, 못 하는 아이들도 극히 드물지만 오기로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니까.


중요한 건 지금 당장의 수학실력에 관계없이,


자신을 믿는 마음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나는 수학을 졸라 잘한다고 절대적으로 믿는 마음이다. 그럼 아마 보통 사람들은,


아니, 실력도 없는데 자신감만 있으면 그건 허세가 아닌가.


물론 당연히 허세다. 허세이고 가짜일 뿐인 자신감이다. 하지만 그거라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라도 억지로라도 믿고 있으면,


나는 수학을 졸라 잘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못 풀리가 없다


라는 오기라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가 나올 때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만약 그런 경우를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냥 농담이라고 웃어 넘겼을텐데 그런 학생이 정말 있었다.


Case 01.

내가 아직 수학선생님으로서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친구 셋이 같이 와서 수학을 배우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전부터 내가 가르쳐서 어느 정도 기초가 되었던 학생이지만, 이 아이는 나중에 와서 기초도 잘 안 잡힌 그런 학생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방임형 수학교육 방식을 썼는데, 한번 풀어서 틀리면, 바로 풀이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두번 정도는 다시 풀어보라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솔직히 같은 문제를 두번 정도 틀리면 내가 지겨워서라도 그냥 설명을 하고 종결시키는 편이었다. 아이들도 보통 그 이상 돌려보내면 짜증을 내거나 지치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정말 특이했다. 네번을 돌려보내도 설명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중간에 내가 지겨워서 그냥 설명해 주겠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한다고 했으니까. 결국은 내가 설명해 주긴 했지만, 그 정도로 끈기가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냥 촐랑대고 말이 많은 아이라 공부에 재능은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러기를 몇달 하더니, 정말 갑자기 수학을 잘 하게 되었다. 새 챕터로 넘어가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왠만한 것들을 다 맞아오는 것이다. 틀리는 것도 한번 정도 다시 풀어보면 다 맞았다. 그 급격한 변화는 그 아이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조금 바꿔놨는데, 나도 아마 그때 처음으로 아이가 이해했을 때의 느낌과 그러지 못 했을 때의 느낌을 구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그 아이의 변화가 너무 놀라워서, 그 아이에게 농담 삼아서,


이제 깨달았냐?


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웃으면서,


이제 깨달았습니다.


라고 한 기억이 난다. 그 변화를 깨달았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뭐라고 표현할까. 그리고 나서 이 아이는 수학을 엄청 잘 하게 되었다. 설명을 했을 때 이해하는 능력도 달라졌고, 문제를 풀 때도 자기가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아이는 몇달을 더 다니다가 수학을 그만두었지만, 간간히 들리는 이야기로는 고등학생이 된 후에 혼자 수학을 공부해도 꽤 잘 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왜 갑자기 그러한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 내 수학적인 지식은 형편 없었고 체계도 없었기 때문에 내 설명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내가 영향을 끼친 부분을 굳이 말하자면 방임형 수학교육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아이가 잘 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아마 그 아이가 그렇게 끈기있게 수학문제에 달라붙을 수 있었던 마음가짐의 원인은, 다른 두 친구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어느 정도 잘 하는데, 본인만 잘못 했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모른다고 해서 기죽거나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인지, 틀려도 틀려도 다시 한번 해보겠다며 당당하게 계속 혼자 도전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아이 이후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못 하면서도 끈기있게 달라붙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그 아이가 머리가 좋았는데 숨겨져 있었던 걸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맨 처음에 갖고 있던 것은 그냥 나도 너희들처럼 할 수 있다 라는, 실력도 받쳐주지 않는 근거없는 자신감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그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있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끈기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수학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해 준다. 잘못된 수학공부방식으로는 아무리 많이 문제를 풀어도 자신감이 하락하면서 점점 결과물도 안 좋아지지만, 끈기있게 고민하는 수학공부방식을 취한다면 다른 문제점들을 대부분 해결해 줄 수 있다. 머리가 나쁜 것조차도! 뭐, 입시수학 한정이지만.


그런 이유로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건 그냥 심리적인 것이다. 지금 당장의 내 실력과는 관계없이,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한번에 안 되면 두번 세번 하면 된다는 그러한 믿음을 갖고 끈기있게 공부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때가 되면 그 자신감도 더 이상 근거없는 허세가 아닐테니까.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실력이 있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인가, 자신감이 있어서 실력이 만들어 지는 것인가.


사실 전자도 어렵고, 후자도 어렵다. 실력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것 같은데, 수학에서는 오히려 겉으로 보면 실력이 있는 것 같은데 실력이 없는 경우도 꽤 많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도,


지금 당장 실력 없어도 돼. 일단 그냥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어!


라고 말을 해봐도,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은 할 수 없다. 사실 마음가짐에 따라 인생사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마음가짐 바꾸기가 힘드니까 이렇게 고생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전자보다 더 어려운 길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기반이 되는 글은 십년전쯤 이미 완성했지만, 그때는 그냥


자신감만 갖으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음, 저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교육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실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허세처럼 보이는 자신감이라도 갖을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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