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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n 08. 2020

그냥 끄적_04

아니, 이걸 왜 외워?

어느 화창한 오후, 중학교 2학년 아이와 수업을 하는 도중에 아이가 물었다.


무한소수는 유리수이다. (참, 거짓)


이런 식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문장들을 외워야 하는 거냐고. 그래서 나는,


아니 이걸 왜 외워?


라고 대답해 주었다. 무한소수가 무엇인지, 유리수가 무엇인지, 그 용어에 대한 뜻을 알아야 되지만, 그것을 이해했으면 저러한 문장, 즉 명제들은 스스로 따져보고 참과 거짓을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대답하고 신나게 수업한 후에 아이가 얘기해 주었다.


친구가 학원에서 그거 외워야 된다고 했다고 해서, 외워야 되는 건지 궁금했다


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경악했다. 아니, 공식 외울 것도 많은데, (뭐, 나는 외운 적이 없지만) 그런 것까지 다 외우면, 어떻게 수학공부를 하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수학 선생님이 정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에이, 그냥 아이가 그냥 외운 거겠지. 설마 정말 선생님이 외우라고 하진 않았겠지. 라고 그 선생님을 위해 변명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정말 외우라고 했다면 왜 그러셨을까.


설마 수학선생님 스스로도 저 문장의 판단을 못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만약 판단을 못 하셨다면, 수학을 가르치시면 좀 위험하다. 이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남는 것은 본인은 이해를 했으나, 아이들이 저 문장의 진위 판단을 하지 못 할 거라고 미리 포기하셨기 때문이겠지. 솔직히 가르치다 보면, 그걸 판단하지 못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런 아이들이라도 시험은 봐야하지 않겠나. 뭐, 먹고사니즘의 입장에서 이해는 한다.


하지만, 무한소수가 유리수인지 뭐가 중요한가. 그거 외운다고 해서 뭐가 좋아지겠나. 정말 세상 살아가는데 쓸데가 없는데. 하지만 무한소수의 뜻과 유리수의 뜻을 이해하고, 무한소수가 왜 유리수가 될 수 없는지를 사색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지식 자체는 중요하지 않되, 지식을 얻는 과정이 우리를 더 나아지게 만드니까.


내게 이 질문을 한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주변에서 그것을 외워야 한다고 하는 분위기에서


대체 이걸 왜?


라고 궁금해 할 수 있는 지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행동은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쓸데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사람들 밖에 없으니까.


수학은 반항적인 사람들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학문이다. 선생님에게도 No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수학적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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