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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n 17. 2020

사이드 스토리_07

01. 이돌이의 모험

내 긴 수학강사 생활 동안, 잊을 수 없는, 내 가르침의 세월에 한 궤적을 남기고 간 아이들이 몇명 있다. 지금부터 내가 털어놓을 아이는, 지금은 이름도 까먹었지만, 지금의 내 교육방식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 십년전쯤의 일이던가.


이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친구 둘과 같이 들어왔다. 좀 웃기긴 한데, 이 아이들을 굳이 수학실력으로 구분하자면, 제일 잘 하는 아이, 중간 아이, 제일 못 하는 아이로 볼 수 있겠다. 그냥 이름을 일돌이, 이돌이, 삼돌이라고 붙일까.


일돌이는 원래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내게서 한번 배웠다가 다시 들어온 아이였다. 머리가 어느 정도 괜찮은 학생이었고, 이돌이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그냥 평범했다. 모범적이고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좋았다. 삼돌이는 공부를 못 했지만, 내 관점에서는 착한 아이였다.


가르친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삼돌이는 학원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이돌이는 적당히 성실했고, 내 관점에선 이미 일돌이의 실력을 추월하긴 했는데, 이상하게 수학시험을 보면 여전히 일돌이가 실력이 제일 좋았다. 그때 나는 아이의 수학실력과 시험점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어쨌든, 2학년 겨울방학 무렵 일돌이도 학원을 그만 두고, 이돌이만 남아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수학강사로서 전혀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의 내 관점에서 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형편없는 강사였다. 수학적인 지식도 형편 없었고, 가르치는 스킬도 형편 없었으니까, 뭐.


그러나 그 때 나는 중요한 결심을 했다. 수학강사로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그 겨울방학 때, 나는 나를 완성시킬 방법을 고민했고, 하나의 길을 찾아냈다. 지금은 그 방법의 이름을 싸이클 수련이라고 이름붙였지만, 그 당시엔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었다.


운 좋게도 그 당시에 그 방법에 걸맞는 EBS 문제집이 딱 한권 있었다. 그걸 두권 사서 이돌이에게 한권을 주고, 내가 한권을 풀었다. 서로 그 방법을 이용해 풀어갔다. 처음엔 나도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보름 정도가 지나니까 어느 정도 숙달되었다. 오히려 한달 정도가 되니 점점 수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수학강사로서 완성되었다 라는 느낌을 처음 받을 수 있었다.




원래 이 방법은 내가 수학강사로서 완성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문제는 이게 이돌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몰랐다. 내가 그 조짐을 처음 눈치챘던 것은 3월의 어느 날 원정혜 선생님의 요가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길에서 이돌이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였다.


선생님! 저 모의고사 수학 52점이에요!


그 당시의 나는 이게 못 봤다는 건지, 잘 봤다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겨우 반타작한 걸 왜 굳이 전화로? 이런 느낌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저 전교 수학 1등 했어요!


두둥!! 그래, 당시 그 학교는 신생 고등학교라 그렇게까지 잘 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 점수로도 전교 1등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기특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이돌이의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Case 01.

고3 이었던 이돌이는 학교에서 이미 수학 진도를 모두 나갔고, 학교 수학선생님은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수학 유인물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수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이돌이는 그 유인물을 다 풀고 나서 할 것이 없어진 나머지, 학교 수학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선생님, 나눠주신 유인물을 다 풀어서 할 것이 없는데, 유인물 그냥 한번에 다 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 말하며 한번에 다 받아와서 풀기 시작했다.


Case 02.

한번은 그 유인물을 풀던 이돌이가 한 수학문제를 갖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경우의 수 문제였는데, 학교 선생님이 풀어준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참을 고민한 후에, 내게 와서 자신이 푼 방법을 검토해 달라고 하여, 검토해 봤더니 나무랄데 없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돌이는 학교 수학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방법을 얘기했더니, 학교 수학선생님이 지음지기를 만난 것처럼 아주 기뻐하며 이돌이가 푼 방법을 칭찬해 주셨다.


Case 03.

원래 이돌이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하던 아이는 아니었다. 그냥 중간 정도. 그리고 그렇게 수준이 높지 않은 학교의 학생들은 입시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경향이 크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1학년 때는 스카이 갈거야. 2학년 때는 인서울 할거야. 3학년 때는 일단 대학만이라도... 뭐 이런 느낌 말이다.


어느 날 이돌이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 친구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도 수시로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는데, 제 친구들은 공부 자체를 안 하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대학을 수시로 갈 거라고 저렇게 얘기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되어요.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한 말이,


너 지금 그 친구들이 하던 말이 얼마 전에 네 모습과 똑같지 않냐? 네가 공부를 잘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너도 조금 변하긴 했구나.


라고 말해줬다. 물론 이건 칭찬이다. 사람은 입장이 달라지면, 견해도 바뀐다. 이돌이는 예전엔 공부를 그렇게 잘 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공부 잘 하는 학생을 편애하는 선생님을 욕했지만, 공부를 잘 하게 되고 난 후엔 선생님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안 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다. 고등학교 수업에 가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수업에 관심이 없이 그냥 자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험성적에 관계없이 자기 수업을 나름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아이에게 애정이 가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그리고 보통 그런 애들이 성적이 좋다.


Case 04.

어느 날 이돌이가 모든 과목 통틀어 전교 1등 하는 친구가 수학문제를 푸는 방법을 지켜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어렵게 문제를 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돌이가 이렇게 하면 더 쉽지 않냐면서 문제를 풀어줬더니, 그 친구는 이돌이에게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해?


라며 매우 궁금해 했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의 내 관점에서 보자면, 이돌이가 수학적인 재능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호기심이 많고, 모르는 것에 대해 좀 더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학교 수학은 크게 문제없이 해나갈 수 있다. 인간에게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욕망은 너무나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돌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대학교 입학시험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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